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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권선거」폭로 대어낚은 박계동(의원탐구: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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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연기」 불댕긴 “도망자”/80년대 시국도피 “신출귀몰”/91년 제도권 진입… 정치개혁 의욕 큰 「긴조세대」
박계동의원(40·민주·서울 강서갑)은 요즘 잘 나가고 있다. 14대 스타탄생의 길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양심선언이 실감나도록 뒷받침을 했고 2,3탄으로 써먹을 수 있게끔 폭로의 소재를 적절히 조정하는데 도와줘 정부·여당이 이 늪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관리의 치밀함을 보였다.
김대중대표로서는 가을 정국 출발점에서 자치단체장 문제를 새로 치장해 여당을 강타할 수 없을까하고 고심하던 차에 정치적 대어를 낚아다준 박 의원이 신통할 수 밖에 없다. 한 전 군수의 아들이 그의 운동권(고려대) 후배여서 인연을 맺었지만 결정적 공세거리를 제공하는데 수훈을 세웠다. 박 의원은 한씨가 아들과 함께 찾아왔을때(8월22일) 엄청난 파문과 고통을 감수할 각오를 한씨에게 물으면서 차분하게 상황을 처리했다. 이틀뒤 한씨가 다시 찾아왔을때는 더욱 결의가 굳어 있었다고 박 의원은 당시 상황을 털어놓았다.
이후 박 의원은 한씨와 여의도 맨하탄호텔에 묶으면서 선거지침서 등 폭로문건을 짜임새있게 정리했고 폭로후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한씨를 보호했다.
『역사의 반전과 변혁이 한 개인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줬다.』
그는 당조사단과 함께 충남도청에서 경찰총수 출신 이종국지사에게 역사의식을 거론하며 이렇게 추궁했다.
박 의원은 재야운동권시절 추적하는 경찰의 속을 무진장 썩였던 명성 높은 「도망자」였다. 운동권계보로 본격 「긴조(긴급조치)세대」에 속하는 그의 80년 5·17이후 도피생활에는 극적인데가 있다. 그와같은 「긴조세대」는 당내에 이해찬·원혜영의원 등이 있다.
당시 그는 고려대 복학생으로 학원시위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당시 학생회장은 신계륜의원(민주·서울 성북을)이었다.
수배령이 내려지자 그는 다음날 무조건 열차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가 두봉주교(프랑스인)의 도움으로 수도원생활,나환자촌의 물리치료사,보일러공 등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나환자 주택개량 현장에서 작업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그는 일본 밀항을 시도한다. 그때가 81년 1월. 정의평화위원회 신부들이 준 임무는 일본에 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거짓을 세계에 폭로하라는 것.
삼천포성당 신부의 주선으로 그는 전남 고흥에서 배를 타기로 했으나 선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밀항모의 현장을 덮쳤다. 그때 그가 라면 10만원어치를 사 용달차를 구해 싣고 우유를 마시면서 삼엄한 검문을 뚫고 나온 것은 재야 이면사에 화제로 남아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수배시절 알게된 한우섭씨를 데리고 다시 부부를 가장한 도피생활에 들어간다.
영등포여상 수학교사였던 한씨는 대학시절(이대)부터 운동권에 속했고 수배자의 연락을 맡아 역시 피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때 가톨릭신부의 도움으로 3백만원이라는 「거금」을 얻은 그는 수원에서 방한칸을 얻어 생활하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터지면서 혐의자에 올라 결국 붙잡힌다. 1년 감옥살이를 끝낸뒤 83년 5월 한씨와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민청련대변인,민통련 조직국장을 지내다 86년 5·3인천사태에 깊숙이 개입한다. 인천사태는 87년 6월 항쟁 직선제투쟁의 출발. 그후 2년반동안 다시 수배생활을 했으나 이때 역시 능숙한 도피술과 민주화분위기를 타고 아파트에서 부인과 다른 수배자와 함께 지내며 르포라이터로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결국 88년 구속돼 1년형기를 마친 그는 90년 전국적 재야조직인 전민련의 대변인을 맡아 재야운동에 새 노선을 모색한다. 『당시 운동권의 전면적 기류는 변화의 수단이 혁명밖에 없다는 것이었지만 이미 시대는 변화하고 있어 운동의 새 방향을 불가피하게 설정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는 제도권정치의 중요성과 재야의 한계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제도권내 개혁」을 내걸고 정치에 뛰어든다. 91년 이기택대표의 구민주당에 이부영 전민련의장을 간판으로 함께 입당한다. 이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그는 야권통합당시 밀사역을 했다.
박 의원은 재야출신이 주축인 당내 민주개혁정치모임에 속해 있다. 이 모임은 온건과 보수쪽을 향하는 「뉴DJ」의 보완역을 맡아 개혁과 참신의 이미지로 유권자를 끌어모으려 한다.
『우리사회는 이제 한계상황에 와있고 이를 타개하는 길은 정권교체와 개혁정치다』. 「도망자」에서 국회의원이 된 신세대의 박 의원이 어떤 개혁정치로 현실정치를 뚫고 나갈지는 더 지켜봐야 될 대목이자 그의 과제라 하겠다.<박보균기자>
□박계동의원 약력
▲부산출신(40) ▲보성고 ▲고대 정외과 ▲전민련 대변인 ▲구민주당 이기택총재 비서실장 ▲14대의원(강서갑) ▲세차례 구속(긴급조치 9호,김대중내란음모 사건,5·3 인천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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