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힘의 외교'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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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힘의 외교'가 기세를 올리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미국에는 '눈엣가시'같던 이란이 부시 행정부의 압력에 결국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두달 만에 미국의 또 다른 골칫거리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도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면서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클린턴 행정부 때의 유화 정책이 달성하지 못했던 성과를 부시 대통령이 얻어낸 것이다. 이라크전 후 게릴라들의 공격이 계속되고 미군 피해가 속출하자 부시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외교정책에 대해 쏟아졌던 비난은 한결 누그러질 전망이다. 리비아의 방향 전환에는 부시 행정부의 강공책이 결정적으로 주효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21일 "(리비아의)오랜 고립이 (카다피의)결단을 불러왔다"고 보도했다.
1988년 2백70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 팬암기 폭파 테러의 배후 의혹을 받던 리비아는 유가족 배상 등의 화해 제스처를 썼지만 부시 행정부는 "테러 지원국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면서 끊임없이 압박을 가했다. 테러 지원국들을 공중과 해상에서 감시하는 대량살상무기 방지구상(PSI)도 리비아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뉴욕 타임스는 국무부 관리를 인용, "리비아는 부시가 북한.이란.이라크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라크전 직전인 지난 3월 리비아가 먼저 영국에 "중재를 서 달라"고 요청하면서 미국에 접근한 것도 더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리비아 정부가 확실한 조치를 취하고 진지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리비아에 미국 정유회사들이 다시 진출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강공책은 두 가지를 확인시켰다. 하나는 '전쟁보다 무서운 게 경제제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하면 오히려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부시의 다음 숙제는 북한이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벌써부터 리비아가 사거리 8백km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북한이 도움을 줬다고 언론에 흘리고 있다. 99년 인도 세관이 억류했던 북한 구월산호에는 미사일 부품과 스커드 B.C 미사일 설계도면이 실려 있었으며, 이 배는 리비아를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따라야 할지, 리비아의 카다피를 따라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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