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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시시각각

정부여 솔직해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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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요즘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추진을 둘러싼 모양새가 바로 그렇다. 도대체 뜬금없다. 지금 왜 기자실이 문제가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집주인 말은 이렇다. 기자들이 '죽치고 앉아' 기사 되고 안 된다 결정하며 누굴 죽이고 누굴 살릴까 '담합'하는 곳이 기자실이라는 거다. 공무원들을 불러다 브리핑을 듣다가 맘에 안 들면 으름장도 놓는 곳이라는 거다. 집주인이 말하는 걸레 냄새다. 그게 싫으니 나가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다른 집에 가서는 걸레 잘 빨고 잘 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기사에 좀 더 현장감이 있어야 한다고도 하고 기자가 좀 더 발로 뛰어야 한다고도 한다. 언론도 변해야 할 때라고 하고 낡은 취재 관행을 선진적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한다. 이런 훈수에 국정홍보처 전 직원이 동원됐나 보다. 국정브리핑 사이트에 가 보면 안다.

옳은 얘기고 좋은 말씀이다. 발로 뛰는 기자와 현장감 넘치는 기사는 기자들이 초년병 때부터 귀에 못 박히도록 듣는 얘기다. 퇴짜 맞고 다시 쓰길 되풀이하면서 체질화한다. 그래도 기자실에서 죽치는 기자가 왜 없겠나 마는 경쟁 치열한 기자 사회에서 자연도태되기 마련이다. 기자실에서의 토론도 당연하다. 하지만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남의 기사를 어깨 너머 베끼는 기자가 왜 없겠나 마는 그 역시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걱정해줄 일이 아니다.

기자실 통폐합이 취재 환경의 선진화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유럽의 예를 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라 한다. 군색한 집주인의 변명이다. 귀족계급에 대한 시민계급의 투쟁 과정에서 발전한 게 유럽 언론이다. 정부 부처 내 기자실이 가당키나 했겠나. 적대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한 게 유럽식 취재 관행인 거다. 미국은 다르다. 동등한 천부적 시민권을 가진 정부와 언론이 협력적 관계로 출발했다. 기자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면 보다 선진적 언론 환경을 가진 쪽은 어딘가. 모름지기 미국이다. 유럽에는 언론에 대한 특혜가 여전히 존재한다. 기자들한테는 자동차값도 깎아 줄 정도다. 이쯤 되면 글로벌 스탠더드는 미국이 맞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기자실이 대단한 곳이라 여기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별 게 아니다. 그저 칸막이 좌석과 통신시설 갖춰 놓고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송고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다. 공짜도 아니다. 운영비를 갹출해 낸다.

홍보처의 누구는 기자들에게 솔직해지자고 했다. 기자실 없어져서 불편하다고 '언론자유'니 '알 권리'니 들먹이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 그런 말은 낯 간지럽다. 정보 공개 약속도 백년하청일 테지만 치부를 감추는 게 인지상정이니 말 않으련다. 정부가 꼭꼭 숨기는 걸 찾아내는 건 기자들의 몫이고 낙(樂)이다. 대신 정부도 솔직해지자. 기자들에게 그깟 편의 좀 제공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방을 빼라고 야단인지 말이다. 9개월 남은 정부가 뭘 바라는 게 있겠느냐지만 떠나는 마당에 미운 언론에 엿이나 먹이겠다는 심보가 아닌지 말이다. 까닭 모르게 언론에 심사가 뒤틀린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보복 폭행이 아닌지 말이다. 방을 빼라면 나갈밖에 도리가 없다. 기자실 없다고 언론이 주눅 들 일도 없다. 하지만 이러다 부동산에 목매는 이 정부가 아파트값 오른다고 버블 세븐의 부동산중개업소 사무실을 하나로 통폐합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