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직원들이 겪은 「민원실 이야기」 책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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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자존심 상해 한바탕 싸웠지만…”/「눈물의 모녀 상봉」 등 41건 희비사례 담아
『40대 아주머니가 민원창구를 찾아왔다. 사연인즉 딸(19)이 2개월전 가출했는데 취직을 위해선 동사무소에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러 올테니 그때 연락을 달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주민등록표에 「신규등본발급시 민원주임 경유」라는 메모를 넣어두었다. 까마득히 잊고 한달쯤 지났을까. 아주머니 말대로 가출한 딸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에 왔고 10분쯤뒤 동사무소에는 눈물로 범벅된 가난한 모녀의 상봉이 이뤄졌다….』
서울 영동포구청 민원담당 공무원들의 체험기를 엮은 책 『민원실 이야기』<사진>에 실린 내용중의 한 토막. 이 글을 쓴 대림2동사무소 양승현씨는 『작은 메모가 가슴 뿌듯한 모녀 상봉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지난 6월부터 일선 동사무소 민원직원들이 몸소 경험한 57건의 사례발표중 41건이 실렸다.
『민원실 이야기』는 민원담당 직원들이 경험한 단순한 친절 자랑(?)만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불친절·행정무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실려있고 보다 친절한 행정을 위한 방안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사소한 관심·배려가 곧바로 선진행정과 직결된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만하다.
『전산기가 고장났을때 40대 신사가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러 왔다. 그러나 민원인은 거주지의 통·반을 몰랐다. 바로옆에 있는 통·반 색인부를 찾아 확인하면 되는데 귀찮고 짜증스러워 통·반을 알아올때 까지는 등본 발급이 안된다며 퉁명스럽게 내뱉고 돌려보냈다.』
격무로 쌓인 스트레스때문에 엉뚱한 민원인에게 짜증을 부렸던 당산2동 민원담당 봉만권씨는 업무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소화할줄 아는 공무원의 자세가 친절의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민원담당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민원담당 직원들이 가장 참아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보분야 대령으로 예편한 분이 전역신고를 하러 동사무소를 찾아왔다. 신고방법을 물어 증명사진·예비군 편성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더니 느닷없이 멱살을 움켜쥐고 「대령출신한테 예비군훈련을 받으라는 것이냐」며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같이 목청을 높여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여의도동사무소 신상기씨는 『대령 출신의 고압적인 자세때문에 자존심이 상해 한바탕 싸움을 벌였으나 퇴근후 귀가길에는 「내가 조금만 참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뒤따랐다』고 적고 있다.
『민원실 이야기』에는 이밖에 「공무원은 희극배우여야 한다」「할머니와 한 잔의 코피」「이 우산 쓰고 가시지요」 등 제하의 솔직한 자기 반성의 체험기가 담겨있다.<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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