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법무실, 김 회장 사건 개입 배임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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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13면

박용석 변호사 에버그린 법률사무소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 와중에서 그룹의 법무실이 관여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김 회장의 개인적인 일에 회사 조직이 동원됐다면 김 회장을 포함한 회사 이사들의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화는 이번 사건이 그룹 경영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법무실이 개입하더라도 배임이 아니라고 맞섰다.

논란의 핵심은 대주주를 위한 회사의 행위가 배임죄가 되는지 여부다. 배임죄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로서 자신이 재산상의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칠 때 성립한다.

먼저 대주주가 회사의 임원이 아닐 경우 대주주를 위한 회사의 행위는 배임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대주주는 회사 주식의 소유자로서 회사의 경영에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회사의 재산관계에 대해서는 일반적ㆍ추상적인 이해관계만 가질 뿐, 구체적 또는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00마7839 결정 등). 따라서 회사의 임직원이 아닌 대주주를 위한 행위는 원칙적으로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3자를 위한 행위가 된다.

예컨대 회사가 대주주의 활동비나 전용 운전기사의 급여를 지급하면 회사의 이사들은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된다. 회사의 경영자가 안정주주를 확보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종업원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회사 자금을 지원하는 행위도 업무상 배임죄의 처벌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주주가 회장ㆍ부회장ㆍ대표이사 등 회사의 임원인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대주주의 행위는 곧바로 회사의 행위에 해당되고, 그러한 행위가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경영판단 원칙을 적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채무변제능력을 상실해 회사가 대주주를 위해 연대보증을 제공한 경우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보증했다면 배임이 된다.

하지만 채권자의 요구에 의해 계열회사라는 이유로 연대보증을 제공했다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주주가 회사의 임원직이라 할지라도 회사가 행한 행위의 주된 목적이 대주주를 위한 것이라면 이사들은 업무상 배임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회사가 대주주의 토지를 고가로 매수하는 행위, 회사 소유의 부동산을 대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매도하는 행위, 대주주에게 주식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전환가격으로 한 전환사채를 발행한 행위, 대주주의 자금조달을 위해 과도하게 대출을 일으켜 대주주의 주식을 매수한 경우 등이다.

비록 대주주의 양해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회사에 손해가 없다고 볼 수 없으므로 배임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전에 변호사의 조언을 받았다거나 사내 변호사와 같이 업무를 처리하였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본다면 한화그룹 법무실이 김 회장을 지원하는 것이 임무 위반행위인지의 여부는 지원의 주된 목적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즉 김 회장의 개인 범죄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배임죄가 될 수 있다. 반면 그룹 및 회사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거나 회사의 연대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배임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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