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신력 큰 흠집/선경의 「이통」 반납 파장과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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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참여 외국사 반발 소송 가능성/재심안싸고 또다른 진통 예상
『제2이동통신(이동전화) 사업권을 「반납」 한다.』
선경그룹(회장 최종현) 당첨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온 국민정서를 수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국제적인 상관행상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경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대선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한 여당권의 강력한 압력을 받은 끝에 24일 오후 사업권 반납에 준하는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경은 24일 급히 사장단의 검토회를 갖고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의견을 모은 것 같으나 반납때의 국제적 쟁송,반납 절차의 문제점 등으로 고민한 것이 역력한 중간발표문을 내놓았다.
여당권은 23일 이후 최 회장으로부터 받은 언질도 있고 해서 선경의 이날 움직임을 「반납의사」로 간주하고 희색이지만 6공식 행정추진에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미봉한 해결방식 탓으로 여러 문제점과 후유증이 잉태되고 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반납」이 말 한마디면 될 일이겠으나 실무적으로는 보통일이 아닌 것이다. 사업권 반납추진이 몰고올 파장을 점검해본다.
◇반납 자격과 국제적 쟁송=우선 사업권을 받은 주체는 대한텔레콤이라는 선경 등 16개 업체(외국기업 3개 포함)가 만든 컨소시엄이지 선경만은 아니라는데서 반납자격 문제가 나온다.
선경그룹(계열사 유공이 참여)의 지분은 31%며 계약상 회사해체 등 의사결정은 구성구주 전원이 합의해야 하도록 되어있어 최종현회장이 단독으로 반납 선언을 해봐야 효력이 없는 것이다.
럭키금성·한전 등 12개 국내 참여기업들은 한국적인 특수성과 선경의 입장을 감안,이에 동의해줄 수도 있겠으나 모두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3개 외국기업이 동의해줄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의 GTE,영국의 보다폰,홍콩의 허치슨 등 관련 3사는 『정부의 정당한 절차를 거쳐 따낸 사업권을 반납시키는 일은 국제적으로 선례가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계약 상대방인 선경을 걸어 손해배상 소송을 낼 가능성이 적지않다.
법률전문가들은 이들 외국회사가 사업을 못하게 된데 대한 기회손실 배상과 위약금,그동안 제공한 기술료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선경측은 청구액이 수천만달러에 이르러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같은 쟁송은 국내에 전례가 없는 것이며 선경은 현재 컨소시엄회의를 열 엄두도 못내고 있다.
◇국제적 공신력=반납은 결국 공신력이 있어야 할 정부의 결정이 법률적인 요인외의 원인으로 인해 바뀐 결과가 되므로 백지화를 한 것과 비슷하게 돼 우리나라의 국제 공신력에 큰 흠집을 내게 된다. 외국기업들의 입장에서 볼때 한국은 투자하기에 예상밖의 위험이 있는 나라로 판단돼 한국의 신인도를 달리 보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선 한국정부 사업에는 믿고 응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선진국 기업 사이에 형성될 소지가 생겼다. 또한 비슷한 컨소시엄을 구성할때 우리 기업들은 이같은 위험에 대한 보장요구로 계약조것이 불리해질 수 있으며 차관·해외 프로젝트 입찰 등 국제 비즈니스에 우리가 참여할때 종래와 다른 불이익이 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공식의 말끔하지 못한 행정과 급한 정치적 뒷봉합이 이같은 문제를 불러온 것이다.
◇재심사 진통=체신부는 선경의 재심자격여부 등 벌써부터 재심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차심사를 통과한 3개 컨소시엄에만 재심자격을 주는 방안 ▲1차에 원서를 냈던 6개 컨소시엄으로 재심을 하는 방안 ▲선경을 뺀 5개 기업으로 심사하는 방안 ▲문호를 완전히 개방해 원점에서 재심사하는 방안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 방법 선정을 놓고 진통이 예상되는 한편 이미 문제와 정답이 다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문제를 크게 손 볼 여지가 많지 않아 우열을 어떻게 가릴지도 큰 쟁점이 된다.
◇경제·기술적 문제=반납된다면 사업추진으로는 백지화나 다름없어 이동통신의 경쟁체제 도입이 1∼3년 연기될 가능성이 커 경제·기술적으로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체신부는 통신시장이 개방되는 가운데 이동통신이 외국기업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경쟁체제를 도입해 기술개발을 해야하며 그래야 외국통신장비 도입이 줄어 무역적자도 줄이고 나아가 기술수출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주파수자원의 제한으로 인해 연내에 제2사업자를 선정하지 않으면 내년말 이후에는 경쟁체제 도입 자체가 불가능해 진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결국 미래산업인 이동통신사업의 발전에 차질이 올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체신부는 다만 전국 10개의 삐삐 사업자는 계획대로 사업을 내년부터 시작하게 할 방침이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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