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자가용 운전자들/스티커 붙이기 “꼴불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섹스·폭력 등 불건전내용 주류/「자기과시」가 문화 사대주의로/당국 “규제할 법적 근거없어 방치”
자가용을 운전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뜻도 잘 모르는 영어스티커,특히 음란·비속한 문구를 차유리창·범퍼 등에 붙이고 다니는 「그릇된 자기과시」가 유행처럼 번진다.
단순한 멋부리기 정도로 여겨져왔던 이같은 스티커 부착은 최근 음란한 내용의 것들이 범람하면서 청소년 정서와 거리분위기를 해치고 은연중 문화사대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나 규제할 법적 근거도 마땅치 않아 사실상 방치된 형편이다.
◇실태=22일 오후 3시쯤 일식집·맥도널드햄버거 등 패스트푸드음식점이 밀집한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골목길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대부분인 고객들이 몰고온 승용차 30여대가 서있다. 그중 20대의 승용차 뒷유리창·범퍼에는 각종 영어 스티커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Boston University」 「Harvard University」 등 미국대학 이름,「Pierre Cardin」 「DUNLOP」 등 외국상품명,「Hot Line」 「Doctor K」 등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가 대부분이지만 이중 6대에는 미국 슬럼가에서나 통용되는 난잡한 은어가 큼직하게 붙어있다. 뒷유리창에 뱀 두마리가 칭칭 감겨있는 그림옆에 「Let’s do the wild thing(성관계를 맺자는 은어)」이라는 낮뜨거운 문구에서부터 「Just get in」 「Begin now」 「Eat me」 등 대부분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암시하는 것들이다.
택시운전사 김익수씨(47)는 『대학이 밀집한 신촌 주변에도 차에 야한 그림과 영문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겠지만 한심한 생각이 들뿐』이라고 말했다. 김모군(K전문대 2)은 『미국에 유학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한 친구로부터 「Do it now」라고 쓰인 스티커를 받아 차에 붙이고 다녔다』며 『처음엔 뭘 열심히 하라는 뜻인줄 알았는데 뒤늦게 성적인 은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진단=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이 과시욕과 성개방 풍조,외국에 대한 막연한 선호의식 등이 맞물려 나타나는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스티커의 90% 이상의 영문으로 문화사대의식을 반영하고 있는데다 내용도 날이 갈수록 섹스·폭력 등 불건전한 내용으로 치닫고 있어 청소년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중부경찰서 이철규교통과장은 『도로교통법에 불법부착물 단속조항이 있지만 스티커는 법규정 적용이 모호해 너무 노골적인 그림이나 문구를 보고 단속할 경우 왜 간섭하느냐는 항의를 듣기 일쑤』라며 대책에 앞서 젊은이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봉화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