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8)형장의 빛|신발 한 켤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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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드디어 방을 얻었습니다.스님, 이제 애들이랑 함께 살 수있게 됐어요.작고 초라한 방이지만 우리 세식구 나란히 발 뻗고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습니다. 꼭 저희 집에 한번 들러주십시오. 제주에서 날아온 유지동씨(45)의 편지는 시종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딸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사주려다 사람을 죽였고 감형되어 출소한 오늘까지도 지은 죄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그가 정말 밉지 않다.
유씨와의 인연은 86년 다른 재소자 일로 제주도를 드나 들면서 시작됐다.유씨의 무료변론을 맡았던 양승부 변호사에게 전해들은 유씨의 사연은 참 딱했다.
제주교도소에 3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는 유씨는 전북 무주가 고향으로 월남에 참전용사로 다녀온 후 72년 제주로 건너왔다. 여러일에 손을 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돈만 날렸다.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럽게 아내와 둘째딸이 죽고 말았다. 술로 낮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린 두아이들 때문이라도 이를 악물고 살아야 겠다고 결심하고 막노동일을 시작했다.
86년9월중순,중학교 다니는 딸 문임의 담임선생으로부터 문임이 3일째 결석이라는 전화가걸려왔다.『틀림없이 아침에 가방 들고 나간 딸애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니…』저녁 무렵,평소와 똑같이『다녀왔습니다』하며 문을 들어서는 딸을 보자 버럭 화가났다. 아이는 야단치는 유씨에게 말없이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발을 넣고 다닌 것이 용할 정도로 너덜너덜 떨어져 있었다. 남학생들이 놀려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힘든 일을 하는 아버지에게 얘기도 못한채.
유씨는 딸에게 신발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아침이 오기전에 새 신발을 마련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랐다. 지난 추석때 건넌방 총각에게 빌려준 3만원이 생각나자 금세 희망에 찼다. 결핵을 앓는 창백한 청년은 밤이 으슥해서야 돌아와 『빌려간 돈을 내 놓으라』는 유씨의 말에 못마땅한 표정을 보이며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화가 난 유씨가 뒤쫓아 들어갔고 그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유씨를 밀쳤다. 그러나 넘어진 쪽은 허약한 청년이었고 그만 뇌동맥 파열로 사망하고 말았다.유씨는 상해 치사혐의로 구속, 광주교도소로 이송됐다. 남매의 간절한소망으로 88년1월 주거지 관할인 제주교도소로 이감 혜택을 받은 유씨를 만나 나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참으로 선량한 사람이었다.
고맙게도 동네 미장원 주인 양행순씨(39)가 남매를 돌보아주고 있었는데 모두 건강했다. 문임은 『맨발로 살아도 좋으니 아버지가 삘리 나오셔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울먹였다.
그후 나는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유씨의 옥바라지와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중앙일보에 유씨의 사연이 기사화되자 이창수 제주지사를 비롯, 각계의 온정이 줄을 이었다.
최종심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은 유씨는 1년8개월만인 88년 부처님오신날 사면으로 가석방됐다.
89년초 나는 제주도에 갈 기회가생겨 유씨집을 찾았다.
『스님,이제 저 혼자 힘으로 살아 가겠습니다. 교도소 안에 있을때 입은 은혜만 해도 감담하기 어려운데요』
그는 건네주는 돈을 끝내 거절했다. 유씨의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문임은 얼른 이불을 꺼내 바닥에 깔더니 『스님 방이 차니 위에 앉으세요』 라고 말해 함께 웃었다.
유씨는 일용 근로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고 문임은 고입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
운동화 한켤레 때문에 사람을 죽인 한 가련한 중생이 이제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되니 나의 마음은 흐뭇 하기만 하다.
유지동사건의 발단은 딸의 다 떨어진 운동화 한결레 있지만 결과는 끔찍한 「살인죄」있다. 그러나 유씨는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각계의 온정으로 새 빛을 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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