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성묘라도 성사시키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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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은 제7차 고위급회담에서 8·15를 전후하여 「남북 이산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교환키로 하고,그 실행을 적십자단체에 위임했었다.
그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북한이 그처럼 꺼려하던 민간인 상호방문에 동의하면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무조건 한다」고 한 북측 안병수대변인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7일 열린 쌍방 적십자실무접촉에서 북한측이 자기네가 제시한 전제조건의 해결없이는 노부모 교환방문을 실현시킬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조건없이」 실행키로 했던 8·25교환방문을 사실상 무산시켜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북한측이 내건 전제조건은 이른바 「반북핵선동」의 중지,이인모의 송환,한미합동 포커스렌즈훈련의 중지 등이다. 이 모두가 불합리한 주장임은 더말할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우리측은 핵문제에 대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서 합의한대로 상호 핵사찰을 실시하지 않는한 실질적인 남북관계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이것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원료를 생산하는 이상 우리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우리의 입장을 철회하고 「핵소동」 중지를 공식선언하도록 요구했다.
미전향 좌익기결수인 이인모송환에 대해 우리측은 상호주의원칙하에 KAL기와 해군함정 승무원 등 북에 의해 납치된 사람들의 문제에 포함시켜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인모를 반드시 노부모 교환방문 이전에 보내야 한다고 우겨왔다.
군사훈련 문제도 마찬가지다. 군대가 있는 곳엔 군사훈련이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포커스렌즈는 70년대이래 한미간에 연례적으로 실시해 왔고 과거 이런 훈견기간에도 남북대화는 있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제와서 훈련을 취소하고 그 사실을 공개선언하라고 요구했다.
노부모 교환방문은 30년대들어 재개된 남북대화의 진실성과 실현성을 입증하는 시금석이다. 따라서 온 겨레가 이 시범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크게 기대를 걸었었다.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북한에 의한 합의불이행이다. 힘들여 합의해 놓고도 뒤에가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남북대화가 아무리 잘 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합의사항은 합의한 그대로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백히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8·25교환방문이 유산됐다고 해서 기존의 합의가 무효화될 수는 없다. 계기는 얼마든지 있다. 성묘의 풍속이 있는 우리에게 추석은 더 좋은 계기일지 모른다. 남북은 다시만나 추석에라도 노부모방문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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