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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설가 서영은·김형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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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1985년 제가 '문학사상'으로 등단할 때 심사위원이셨어요. 제 머리를 올려주신 분이죠."

소설가 김형경(43)씨는 곧바로 서영은(60)씨에 대한 자신의 발언을 수정했다. 반페미니즘적인 '머리' 운운 대신 문단에 나오도록 이끌어주신 분으로 표현을 바꿔달라는 주문이었다.

김씨는 서씨와 같은 강릉 출신이라고 했다. 그래선지 글과 사람에게서 어떤 정서적인 동질감이 느껴진단다. 동질감의 실체는 작가 앞에 놓인 삶과 일상을 우회하지 않고, 이를테면 정면 대결하는 것이다. 인생을 사막에 빗댄 서씨의 장편소설 '사막을 건너는 법' 같은 작품의 제목에서도 다른 작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결의 의지를 느꼈다고 한다.

김씨는 "제자 같은 후배에게도 '씨'라는 호칭과 함께 경어를 사용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속되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서씨는 "김씨는 거의 발굴을 한 경우"라고 밝혔다. "응모작들이 시원치 않아 고민 중이었는데 이미 시로 등단한 김씨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작품을 보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의 중편 '죽음잔치'는 당선작이 됐다.

서씨는 "바다가 키운 담대함 때문인지 김씨는 좀처럼 좌절하지 않고 그릇이 큰, 선배 같은 후배 작가"라고 말했다. '그릇 큰' 됨됨이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많다. 97년께 강릉에 살던 김씨는 운전면허증을 따자마자 차를 덜컥 구입하고는 바로 한계령을 넘어 서울 서초동의 서씨를 만나러 왔다. 바로 차를 산 일도 그렇지만 태백산맥을 넘은 초보의 용기도 서씨를 놀라게 했다.

한번은 김씨가 1년간 유럽 여행을 떠난다는 계획을 서씨에게 말했다. 긴 기간에 놀라고 있던 서씨는 집을 처분하고 간다는 말을 듣고 한번 더 놀랐다. 여행을 다녀온 김씨는 도중에 만난 청년과 한동안 열애에 빠졌다고 한다. 서씨는 "김씨는 그야말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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