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책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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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민학교 7학년』『학급생활 1급비밀』『첫번째 데이트』『사춘기 오춘기』『6학년4반 청개구리들』『공포의 블랙홀』-.
이것은 최근 국민학교 5∼6학년생들 사이에 가장 인기있다는 이른바 명랑소설의 제목들이다.
『드래곤 볼』『닥터 스럼프』『북두신권』등 일본 번역만화들도 국민학교 3∼6학년생들까지 광범위하게 인기를 끌고있는 도서목록.
아이들은 스스로 이러한 유의 책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비교육적이고 좋지않은 내용이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본 번역만화들은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것들이많아 나쁜 책들이라고 스스로 평하기도.
『이런 책들을 볼 때는 선생님이나 엄마한테 들킬까봐 걱정이 될 때가 많아요. 그렇지만 재미있고 현실감이 있어 안읽을수 없어요. 또 다른 친구들도 모두 다 읽어서 나만 안볼수도 없어요.』
진수(12·서울J국민학교6)는 이런 책들은 친구들끼리 돌려가며 읽고 모여 앉아서 책얘기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도 찾지 못하는 없어진 아이를 찾아주고 어른들도 벌벌떠는 나쁜 사람들도 혼내주고…. 여하튼 우리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소설주인공들이 대신 하고 있어 더욱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집에 부모가 사준 50∼1백권 한 질로 된 동화책·위인전등 아동도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 J국민학교의 6학년2반에는 한질로 된 아동도서가 없는 아이들이 전체 60명중 5∼6명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지역 B국민학교의 경우 아동도서가 없는 집은 거의 없다는 것이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이렇게 한 질로 된 아동도서는 잘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양이 너무 많아 보기도전에 질리고, 글씨가 작고, 책껍데기도 딱딱하고 모두 같은 모양이라 그책이 그책같은 것이라는생각이 드는데다 실제로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이 많아 재미없다는것.
아이들은 우리나라 위인전은 너무 현실감이 없고 재미가 없어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위인전을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등으로 내줘 강제로 읽은 5∼6권을 빼고는 정말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은 것은 외국 위인전 1∼2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숙제로 읽는 위인전도 대부분은 어린시절 이야기는 건너뛰고 숙제에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읽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인물사전에서 읽은 내용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이 그래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위인전이라고 꼽는것은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이야기. 그래서 가장 존경하는 위인을 꼽으라면 에디슨과같은 외국의 위인을 거명한다. 이순신 장군·세종대왕등 우리선조 위인을 꼽는 경우는 거의없다. 오히려 우리 선조들중에는 훌륭한 과학자도 없고 순전히 장군이나 정치가뿐이라고 불평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에디슨등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이들이 아이들의 관심분야인 과학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는것. 그러나 실수도 하고 어른들의 이해를 받지못해 야단을 맞으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위인전의 내용에 크게 공감해 이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동화로 안데르센동화를 꼽고 학교에서 읽으라는 우리나라 동화가 가장 「재미없는 책」이라고 입을모은다.
경호(11·서울B국민학교5)는 벌거숭이 임굼님 같은 책은 읽고난 다음 재미가 있어 자꾸 생각하다 보면 교훈을 얻을수있는데 선생님이 추천해준 우리 동화는 너무 교훈만 주려고 애써 읽고나면 재미없는 책이라는 생각만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콩쥐·흥부·신데렐라는 멍청한 인물』이라며 이런 인물들이 복을 받던 시대는 옛날로 끝났다고 말한다.
『내가 흥부처럼 맞아도 웃고, 형에게 내것을 다 뺏기고도 그럴수 있으려니 하고 포기한다면 아마 엄마나 선생님도 나를 답답해하며 미워할 거예요. 그러면서도 선생님이나 엄마는 항상 독후감내용은 「흥부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 나도 흥부처럼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식으로 써야 좋아하시죠.』
경수(12·서울J국민학교6)도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문학평론가 이재철교수(단국대 국문과)는 『어린이는 성장단계에 따라 관심사가 변하기 때문에 명랑소설이나 공포·괴기소설이 읽히는 시기가있고 이러한 독서가 독서습관을 기르는등 좋은 작용을 할수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나오는 명랑소설중에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발상에서 기획·제작된 것이 많아 문제라는게 이교수의 지적이다.
이교수는 또 『위인전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감동적인 삶을 산 선인들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데 좋은 책이지만 일세의 영웅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그린 책을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것은 오히려 좋지않다』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위인전중 일본 것을 그대로 베꼈거나 지나치게 미화하는등 문제가있는 책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실제로 책 선정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등의 독서지도는 필수적이다. 이에따라 독서지도시 어른들은 성장기에 따른 독서능력의 변화에 맞춰 책을 선정해주되 내용이 재미있고 지나치게 교훈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고 이교수는 충고한다.
만6세이상이 되어 국민학교저학년때는 이솝의 우화로 시작하여 안데르센 그림의 동화책·신화·전설로 범위를 넓혀나간다. 만 10세이상이 되면 이른바 소년소녀 소설을 읽게되고 모험·추리소설·영웅물에 관심을 갖는다. <양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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