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투자자도 ‘중국 거품 붕괴’ 대비할 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호 22면

“지금 중국 증시에선 너무나 고전적인 거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역사 속 금융투기의 시대에 반복됐던 거품 양상이 현재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다.”

재테크 초대석 『금융투기의 역사』 저자 에드워드 챈슬러

英 케임브리지ㆍ옥스퍼드 대학서 역사학 전공 투자은행 라자드 브러더스서 트레이더로 활동 파이낸셜 타임스ㆍ이코노미스트의 객원 칼럼 니스트. 현재 브레이킹뷰스의 편집부국장

에드워드 챈슬러(사진)는 중앙SUNDAY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망설임 없이 중국 증시의 거품론을 제기했다. 챈슬러는 현재는 뉴욕 월스트리트와 런던 시티의 금융 전문가들에게 고급 경제ㆍ금융분석을 제공하는 브레이킹뷰스(Breakingviews)의 편집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챈슬러는 “내가 『금융투기의 역사』를 썼다고 해서 모든 자산가격 흐름을 거품론으로 해석하진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중국 증시의 거품 논란에 대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것은 열서너 살 먹은 소년에게 사랑과 성욕을 구분하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경구처럼 거품을 거론하긴 힘들다”고 전제한 뒤 “그 답은 역사의 교훈을 통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역사 속의 거품 현상이란 무엇일까. “터무니없는 주식가치 고평가, 사회 구석구석에 퍼진 일확천금 욕망, 다른 사람의 수익을 내 손해로 여기는 초조함 등”이라고 그는 답했다. 지난해 5월 1500선이었던 상하이증시 종합지수는 현재 4000을 넘어선 상태.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주가를 기준으로 중국 증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42배 수준이다. 인터넷 거품 시기 나스닥의 평균 PER(35~38배)보다 높다. 현재 미국 증시의 PER은 17배 선이고, 한국은 12배 안팎이다.

현재 중국 국민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식에 들떠 있다. 직접투자 계좌수만 무려 9000만 개를 넘어섰다. 최근 1주일 사이에 270만 계좌가 늘어났다. 벽촌의 스님과 대도시의 청소부까지 주식매수에 뛰어들고 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주식 수익률 대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시기인 1719년 남편을 잃은 한 시골 여성이 금쪽같은 땅을 팔아 주식을 사들였고, 1920년대 조셉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버지)의 구두를 닦던 소년이 돈을 받자마자 증권사로 달려가 주식을 샀던 장면이 연상되지 않는가. 중국인은 지금 당장 주식을 매입하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챈슬러는 “중국 증시의 활황은 실물경제의 급성장, 기업 이익 급증, 내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 등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이미 주가는 이를 한참 앞질러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경제 앞날에 대한 중국인의 오만에 가까운 자신감이 버블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인들 마음속에는 앞으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자신감이 팽배해 있다. 한 나라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빠져 있을 때 주가는 이상 급등하게 마련이다.”

챈슬러는 그 자신감이 1920년대 미국인, 80년대 일본인이 가졌던 자기확신과 매우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중국 증시의 버블은 언제쯤 터질 것인가. 챈슬러는 “주가의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지만, 투기의 역사에 비춰 몇 가지는 추정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중국 정부와 일확천금에 눈이 먼 대중이 상당기간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최근 중국 경제 당국자들이 증시 과열을 우려하며 위험성을 구두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급등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의 경고를 무시해버린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 경제 당국자들은 버블을 먼저 경험한 나라의 당국자들처럼 구체적인 대책보다는 급등의 위험성을 자주 경고할 것이다. 정부는 구두 경고로 시간을 허비한 뒤 증시 안정대책을 강구하게 되는데, 효과는 크지 않다. 초조해진 정부는 ‘급격한’ 금리인상과 직접적 유동성 규제 등 보다 강력한 처방을 내놓기 시작한다. 결국 버블은 붕괴한다. 중국 증시의 앞날을 알고 싶으면, 정부의 대책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직 구두 경고 단계인 것을 보면 중국 증시의 거품은 한동안 더 부푼 뒤 터질 것이란 얘기도 된다.

그렇다면 버블이 붕괴된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신기술 개발보다 한 나라의 경제가 비상할 때 발생하는 버블의 후유증이 크고 오래갔다”고 그는 말한다. “1820년대 영국과 1920년대 미국, 1980년대 일본에서 거품이 꺼진 뒤 그 후유증은 10년 정도 이어졌다. 반면 19세기 중반 철도와 1990년대 인터넷 거품 후유증은 2~3년밖에 가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2003년 이후 빠르게 회복했고, 뉴욕 증시는 현재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신기술 등장으로 비롯된 거품보다는 지나친 자신감과 애국심에 바탕을 둔 버블이 더 많은 사람을 주식시장에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피해가 광범위하고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다.”

중국 증시의 버블이 터질 때 한국 증시는 어떨지 그에게 물었다.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이 중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버블 붕괴의 파장은 중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품 붕괴 이후에는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품 파열은 세상의 끝이 아니다. 1929년 이후 미국의 실물경제는 대공황을 겪고 있었지만, 뉴욕 증시는 1933년 50%나 급반등했다. 지금이야말로 중국의 거품 파열 이후를 대비한 투자전략을 서서히 만들어둬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