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말이 필요없다” 승마의 매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호 15면

중앙포토

국내 승마 인구는 4만여 명에 이른다. 남병곤 대한승마협회 홍보이사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말을 타는 인구가 3만~4만여 명이고 주 3회 이상 승마를 즐기는 사람은 1만5000여 명 정도다. 여기에 승마를 배웠다가 중단한 사람이 5000여 명, 배울 마음이 있는 잠재인구는 7만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승마동호인 대부분은 스키ㆍ수상스키ㆍ골프 등 ‘폼 좀 나는’ 운동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섭렵해본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저것 다 해봐도 승마가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남 이사는 “골프에 빠졌던 주변 사람들이 승마를 알게 된 후 골프채를 부러뜨려버리더라. 마누라는 빌려줘도 말은 안 빌려준다고들 한다”며 농담 섞인 ‘승마 예찬론’을 폈다. 아직은 먼 거리에 있는 것만 같은 승마에는 과연 어떤 ‘마력’이 있는 걸까.  

승마장을 벗어나 야외에서 즐기는 ‘외승’은 승마의 꽃이다. 신동연 기자

말은 내 가족, 진한 교감에 ‘풍덩’

사설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황승란(43)씨는 지난 2000년 처음 승마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강습을 받다가 승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고, 4년 전에는 자신의 말을 구입했다. 올해 여덟 살 난 수말 ‘첼로’다. 승마용 수말은 거세마라서 성격이 온순하다고 한다. 황씨는 첼로와 인연을 맺은 이후 승마와 다른 스포츠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됐다. 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 “첼로가 가족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처럼 말과 교감이 시작되기 때문에 승마는 특별하다. 그리고 그 매력이 무궁무진하다. 영화 ‘드리머’에서처럼 주인공 소녀가 말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승마의 핵심인 셈이다. 스포츠 종목인 승마는 스피드를 겨루지 않는다. 마장마술에서는 얼마나 우아하게 연기하고 말과 호흡을 맞췄는지가 채점 기준이다.

황씨는 “말들 역시 지금 주인이 겁을 먹고 있는지, 기분이 좋은지 금세 눈치를 챈다. 첼로가 보고 싶어서 평일에도 차를 몰고 승마장에 달려올 때가 많다”고 말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황씨는 “처음에는 말이 아플까봐 채찍으로 때리지도 못했다. 내 종아리를 직접 때려보고 나서야 겨우 몇 대 때릴 수 있었다”며 웃었다. “말만 보면 ‘애마부인’ 같은 에로영화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은 정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황씨는 오랜만에 만난 첼로가 장난치다가 얼굴에 긁힌 상처가 생긴 걸 보고는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과연 어떤 스포츠가 이처럼 따뜻한 교감으로 눈물까지 흘리게 만들겠는가.  

알고 보면 골프보다 싸잖아!

골프를 즐기는 경우 필드에 한 번 나가면 그린피와 캐디피 20만원 이상은 예상해야 하고, 매달 연습장 이용료와 레슨비도 필요하다. 장비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저렴하게 승마를 즐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승마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월 20만원 수준의 레슨비를 내고 6개월 정도 강습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기본자세를 잡아야 승마장 이용이 가능하다. 서울의 한 승마장의 경우 말을 빌려서 타는데 특정 동호회에 가입한 단체회원은 3만원, 개인은 5만4000원(이상 45분 기준)이 든다. 요금의 기준이 되는 45분은 초ㆍ중급자의 체력으로 알맞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말은 아무나 살 수 없다는 것도 편견이다. 경주마로 뛰다가 퇴역마로 결정된 말은 최소 700만~1000만원 선에 구입할 수 있다. 월 40만원 수준이면 말 관리도 가능하다. 화성시 승마협회의 이동택 회장은 “말의 품질이 가격과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엘리트 선수라면 좋은 말이 꼭 필요하겠지만 승마를 즐길 사람이라면 저렴한 말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승마 동호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1300cc급 승용차 가격 정도의 말”이라면 승마의 즐거움을 누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들은 “아무리 비싼 말이 있다 해도 내 말이 세계 최고의 명마”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럭셔리한’ 승마를 즐기고 싶다면 돈을 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 회원제로만 운영하는 고급 승마클럽은 개인회원비가 5000만원, VIP회원의 경우 1억5000만원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동호인들은 좋은 말을 여러 마리 소유하기도 하고, 외제차를 모으듯 말을 사들이는 데 재미를 붙이기도 한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승마에 출전한 아랍 왕족들의 말이 한 마리에 24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연에서 즐기는 바로 이 맛

승마 동호인들이 ‘승마의 꽃’으로 부르는 것은 울타리가 있는 승마장이 아닌 야외에서 즐기는 ‘외승’이다.

황승란씨가 말을 맡기고 있는 전상균 승마클럽은 경기도 과천시에 있다. 승마장은 도로에서 구불구불한 숲 속의 외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야 나온다. 덕분에 승마장을 둘러싸고 있는 한적한 숲길에서 즐기는 외승의 맛이 그만이다. 외승은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강습을 받아야 가능하다.

승마를 잘한다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 먼저 기본기는 허리를 곧게 펴는 바른 자세다. 승마장 한편에는 전면이 거울로 돼 있어 말을 타면서 자신이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황씨는 “승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써야 하는 운동이다. 머리로는 집중하고, 발끝까지 긴장하고 힘을 줘야 한다”면서 “허리를 펴는 자세 때문에 평소 나빴던 자세도 교정되고, 말 위에서는 끊임없이 상하로 움직이기 때문에 장운동이 저절로 돼 변비도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기본기를 다지면 외승을 즐길 수 있다.

외승은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나 승마동호회에서 MT를 떠나듯 함께 나간다. 자동차 뒤에 말을 실을 수 있는 캠핑카 모양의 마차를 달아서 말을 데려가기도 하고, 해변의 승마장에서 말을 빌리기도 한다. “말만 들으면 호화스럽다고도 하는데, 사실 주말에 필드 한 번 다녀오는 것보다 싸다”는 게 동호인들의 말. 이동택 회장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해변에서 자연산 회 한 접시 먹고, 또 석양과 일출을 바라보며 해변에서 말 달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