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쇄경영」이 남긴 교훈/이재훈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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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편의 장편추리물처럼 숱한 의혹을 던져준 정보사땅 사기사건은 결국 「단순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로 친다면 거창하게 전개해나가다 마무리가 형편없이 돼버린 수준이하의 작품으로 판명난 셈이다.
이 사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세간의 주된 관심사는 재테크전문의 보험회사가 왜 이런 허술한 사기에 말려들었느냐는 점이었다. 사건의 결말이 싱거워 보이는 이유도 이런 숙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졸작이 「정보사 드라마」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담고 있다. 제일생명이 사기극에 휩쓸린 내막적 이유야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이 회사의 주변 정황을 살펴볼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제일생명은 폐쇄적인 경영으로 소문난 회사다. 회사의 핵심포스트는 사주의 사돈·처남·사위,심지어는 친구에 이르기까지 온통 집안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회사의 주된 의사결정도 철저히 이들 소수인원에 의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의 주총이나 이사회가 직원들 사이에 「박남규회장 가족회의」로 통하는 것만 봐도 그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윗분」들의 생각이 뭔지 몰라 항상 「안테나」를 돌려야 한다는 직원들의 푸념을 어렵잖게 듣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폐쇄적인 의사결정체계의 허점을 드러낸 단적인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사내의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다수의 여과과정을 거쳤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우스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주변의 분석이다.
특히 자영업자도 아니고 공적 책임이 강조되는 금융기관이 고객의 소중한 재산을 막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은 이런 폐쇄적인 경영구조를 떠나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이는 또 조직력이 아닌 소수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영방식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받아들여진다.
물론 제일생명은 이번 일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파문의 크기를 고려할때 처벌이 약하다는 일부의 견해도 있지만 어쨌든 기관경고·무더기 징계라는 유례없이 강한 벌을 받았다. 또다시 「소」를 잃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늦게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그 「외양간」은 무엇보다 「열린 조직」,「다수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란 모습으로 새단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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