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철밥통 깬 울산 이번엔 '탈권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울산 남구는 18일부터 열리는 울산고래축제 개회식 식순에서 축사.격려사를 빼기로 했다. 행사 때마다 10여 명의 정치인.지역유지들이 '한말씀'씩 하는 바람에 축제를 즐기러 온 시민들이 이들의 얼굴 알리기에 들러리를 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울주군은 각종 군민 체육행사 때 개회식 자체를 없애고 바로 경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울산시도 각종 시상식 때 수상자들이 관중을 등지고 서던 것을 마주 보도록 바꾸는 등 수상자가 시상자보다 빛나도록 배려하기로 했다. 무능공무원 퇴출제를 도입해 공직사회 철밥통 깨기의 신호탄을 올렸던 울산에서 이번에는 '시민을 주역으로' 되돌려 놓는 탈권위주의 바람이 불고 있다.

◆ 탈권위주의 바람=고래축제의 주최 측인 김두겸 울산 남구청장은 올해 행사 때 다른 내빈 소개만 하고 '한말씀'을 포기했다. 식장 한말씀은 축제추진위원장의 2분짜리 개회사만 하고 지난해까지 축사를 했던 지역유지 10여 명의 '한말씀'은 축제 안내장에만 올리기로 했다.

남구청의 이런 결정은 지난해 고래축제 때 참석한 시민들의 반응 때문이다. 구청장이 축제 주최자 자격으로 개축사를 하는 걸 빼놓을 수 없었고, 구의회 의장은 구청장과 동급이라서, 울산시장.시의회의장에다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 2명까지는 더 웃분이어서, 내친김에 축하해 주러 온 타 지역구 국회의원 등에게까지 모두 연설할 기회가 주어졌었다. 서너 차례를 넘어가면서 "앞에 나온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하셨으니 저는 간단히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며 운을 뗐지만 '몇 마디'는 몇백 마디로 길어지기 다반사였다.

식장에 모인 시민들 속에서 "뙤약볕 아래에서 들어줘야 하는 우리 생각도 좀 해줘야 할 게 아니냐"며 웅성거림이 들렸지만 축사행렬은 이에 아랑곳없이 1시간가량 이어졌다. 시민을 위한 축제장이 정치인들을 위한 선거유세판으로 둔갑한 데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컸던 점을 감안, 올해부터 축사를 모두 뺀 것이다.

울산 울주군은 지난달부터 각종 체육대회에서 개회식 자체를 않기로 했다. 지난달 15일 언양읍 반천의 구민체육관에서 열린 '군수기 여성배드민턴대회' 때부터 곧바로 대회에 들어갔다. 송성찬 울주군 체육문화과장은 "그동안 대회 장소가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는데도 참가 주민들이 정치인들의 권위주의적 한말씀 때문에 한자리에 모여야 했다"며 "행사 주체를 정치인이 아닌 군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앞으로도 개회식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