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성금싸고 싸움 할땐가/윤재석 국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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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며칠사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가뜩이나 후텁지근하고 짜증나는 국내 분위기에 불쾌지수를 더해준다.
4·29 LA폭동피해 교민들의 조속한 피해복구와 재기를 기원하며 본국과 미국·일본 등지에서 보낸 성금 7백여만달러의 배분과 용처를 놓고 교민들 사이에 이견이 표출되더니 급기야는 농성에 완력행사로까지 발전했다는 소식이다.
지난 11일 4·29폭동 피해자 협회 공청회에 참석한 피해자 6백여명이 『보상소송비용 1백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전액을 모두 배분하자』고 결의한데 반해,대책본부 성금관리위원회측은 이를 종자돈(Seed Money)으로 2천1백만달러의 은행융자를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3천여 피해자들에게 나눠주어봤자 가구당 3천달러가 채못되는 소액에다 피해 정도차이에 따른 배분상의 불공정성도 우려된다는 의견이었다.
피해자들이 성금관리위측의 제의를 일축했음은 물론이다.
개미처럼 모아온 자산을 졸지에 날려보낸 교민들에게 있어 성금을 입금시키고 또 융자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번거롭게 느껴질 것이 뻔하니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일부 피해교민들이 이견조정과정에서 보여준 치졸성과 폭력성이다.
이들은 14일 박종상주LA총영사를 찾아가 성금분배협조를 요구했는가 하면,17일엔 성금관리위 사무실로 몰려가 물리력을 동원,성금지급동의각서를 받아냈다는 후문이다.
사실 4·29 LA폭동은 갖가지 역경과 질곡속에서 이민의 삶을 일어온 교민들에게 청천벽력의 재난이긴 했지만,이를 계기로 오히려 강한 응집력을 보여 재기작업에 들어가는 기민성과 함께 영어세대인 1.5세,2세들이 교민사회의 주역을 자임하고 나서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역시 「엽전」은 할 수 없다』는 자조적 언사를 쓰지 않을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피해규모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한 미미한 성금일지언정 용처와 배분은 어떻게든 공정하고 누구나 납득이 가능한 방법으로 수행돼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과정에서 더이상 불신에 의한 흑색선전과 물리적인 대응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권위있게 꾸짖을 수 있는 어른 하나없이 유아독존격 명망가들만 가득한 가운데,돈과 감투가 개재될 때마다 「반드시」 난무하던 구설수와 폭력이 이제부터는 제발 50만 LA교민사회를 비롯,모든 해외교민사회로부터 영원히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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