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패권 추구하는 일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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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핵물질의 대량수입·대랑생산을 추진하는 일본의 태도는 주변 국가들에 적지않은 불안과 긴장을 안겨준다. 향후 20년간 플루토늄 40t을 구입할 계획인데다,지난 5월 우라늄농축 공장을 가동에 이어 다시 연간 6t의 처리능력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고속증식로 재처리시설의 건설을 추진중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년후 일본은 지금 미국이 보유하는 수준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의 핵물질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일본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목적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엄격한 국제사찰을 받게 되어 있어 일본이 당장 핵무장 국가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일본이 보여온 군사화의 행태로 미루어 결국 핵강국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우려를 주변 국가들은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헌법은 『국권발동으로서의 전쟁과 국제분쟁 해결수단으로서의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 이 목적을 위한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위대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편성하여 막강한 육·해·공군력을 보유하고 다시 캄보디아 파병을 위해 PKO법을 제정했다. 이 엄연한 현실들은 일본의 헌법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일본이 필요이상의 핵물질을 보유·생산할때 일단 핵무장으로 가는 과도조치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일본의 핵정책은 핵축소라는 일반적인 국제정세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미국과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이미 핵재처리의 축소를 밝혔고 고속증식로 건설계획을 취소했다.
일본의 핵증강은 비핵화를 위한 남북한의 노력에 방해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더욱 유감이다.
남북한은 이미 비핵화 공동선언을 통해 핵재처리를 포기키로 하고 지금은 상호사찰문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일본의 핵증강정책은 남북한의 비핵화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구소련의 붕괴로 생긴 힘의 공백기이자 세계 질서의 재편과정이다. 최근들어 일본이 해외에 군대를 보내고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을 노리면서 유엔헌장의 적국조항삭제를 위해 외교력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새 시대의 세계패권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핵증강노력도 그런 패권추구의 연장으로 보인다. 지금의 계획대로 되면 일본은 머지않아 세계적인 핵패권국가가 되어 핵물질공급을 통해 주변국가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될 우려가 크다.
이는 세력균형의 새로운 변동이다. 균형의 변동은 항상 국제적인 긴장을 가져오고 심하면 전쟁까지 유발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핵정책은 긴장완화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축소조정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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