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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1)제88화 형장의 빛(16)"대도"박명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7O년대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현대판 의적 박명수를 만난 것은 74년 대구교도소에서였다. 박씨는 사회의 부유층과 권력층을 상대로 사기·강도를 일삼아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품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대구교도소에서 설법을 하던 나는 어느 날 『불경 한 권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는 그를 만나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장골에 사내다운 당찬 모습이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축현장에서 막일을 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면서도 고아원 등지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먹을 것을 전해주기도 했다. 현장에 오래 있으면서 공사장 감독이 일꾼의 노임을 깎아먹는 행위 때문에 그의 가슴에 분노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 일꾼들이 빼앗긴 일급만큼 되찾을 생각으로 현장자재를 몰래 팔아 얻은 돈으로 일꾼들의 주머니 속에 몰래 넣어주었다.
결국 꼬리가 잡혀 현장에서 쫓겨나 부산에서 손수레 하나를 끌면서 행상을 했다. 어느 날 새벽에 장사를 하기 위해 범일동 산비탈 셋방에서 내려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울면서 그를 붙들고『아들이 간밤에 급성맹장에 걸려 입원도 못시켜보고 죽었는데 손수레로 아들 시체를 실어달라』고 간청했다. 그 날 그는 그 여인의 아들을 장사지내주고 손수레를 집어치웠다. 그의 눈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들을 도울 결심으로 부유층·권력층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사기 술을 동원했다.
『나는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인데 당신 남편이 감사에 걸려 모가지가 나갈 지경이니 아무데도 연락말고 돈 3백 만원을 가지고 법원 앞으로 나오시오.』
남편의 명예가 걸린 문제여서 인지 부인들은 금방 돈을 가지고 나오곤 했다.
박씨는『70년초 온 국민이 골고루 나눠 가지면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때인데도 몇몇 사람들이 재물을 독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에겐 그들이 인간동물로 보였습니다』 하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이와 같은 수법으로 경찰서장·병원장·대기업체 사장 등의 집에서 금품을 빼앗아 자기 주변에 약값이 없어 고민하는 사람, 배곯는 사람, 고학생들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나누어주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껌 하나도 사지 않았다.
결국 그는 경찰에 붙잡혔다. 빼앗은 돈은 모두 자기 자신이 방탕하게 써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돈 쓴 내력을 적은 일기장을 발견한 담당형사가 캐묻자 『내가 돈을 준 사람들이 다시 그 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가슴아프니 내가 유흥비로 쓴 것으로 기록해 주십시오. 어떠한 형벌도 받겠습니다.』하고 애원하기도 했다. 담당형사조차『당신처럼 착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선한 인격을 지녔다.
그의 행위는 분명 범죄였다. 목적은 좋았으나 수단이 나빴다. 선한 일, 아름다운 일은 수단도, 목적도 좋아야한다.
『스님, 찢어지게 가난하더라도 희망이 있는 한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감방 안에서 배웠습니다. 세상에는 가난하면서도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코 가난이 죄일 수는 없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고통 당하고 병으로 앓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소하면 제 육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남을 돕다가 사라지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앞으로도「임꺽정 정신」으로 살겠 노라는 그는 그 후 몇 년 뒤 출소한 후 한 무기수를 돕기 위해 매달 돈을 부쳐 주었으며 착실치 불우한 이웃들을 도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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