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국가 경영방향 제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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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경련이 차기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정의 주요분야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정리·제시한 것은 구체적 내용들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일단 바람직한 일로 평가할만 하다. 「경제계가 바라는 새 정부의 국가경영」이라는 제목의 이 건의서는 기술·산업·통화·금융·재정 등 경제분야 뿐만 아니라 교육·통일·행정 등 재계의 활동영역과 관련성이 적은 분야까지를 포함,국정방향을 매우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두드러진다.
건의서의 전편을 꿰뚫고 있는 정신은 민간기업의 창의와 자율을 존중하는 시장원리다. 이것은 재계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온 원칙으로 이 원칙이 모든 경제활동에 하루속히 확산돼 나가는 것이 좋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을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쟁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일과 시장원리를 확산시키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는 이치를 간과하고 있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건의서의 항목별 내용을 뜯어 보면 종래의 전경련 입장을 크게 바꾼 대목들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적자재정까지를 감내하는 적극적인 재정정책 운용을 강조한 대목은 민간부문 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재정긴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과거의 입장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재정지출 확대의 불가피성에 대한 근거로 이 건의서는 과감한 산업기술 개발투자,공무원 및 교원 처우개선,영세민 대책 등을 위한 지출증가를 들고,또 세입 부문에서는 소득세율의 하향조정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논점들은 그 하나 하나를 떼어 생각하면 모두 타당성을 지나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한꺼번에 반영한 결과는 재정적자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세출확대와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우리 경제의 안정기반이 튼튼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적 사업에 돈을 더 많이 쓰자고 주장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의 지출축소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정치권의 공약에서 항상 보아온 공통된 특징이었음에 비춰 경제단체가 제시하는 재정운용 방향은 최소한 이같은 불합리성에서 벗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자본참여에 관한 견해도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건의서에는 중소기업 경영권 침해를 막기 위해 자본참여 비율을 20∼30%로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나 이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기존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로 인한 득선을 심도있게 따져야 하며,이에 대한 중소기업측의 의견도 반드시 참작해야 할 것이다.
전경련의 입장제시가 건의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각 부문별 국정과제의 수행에 있어 재계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부분도 함께 제시했더라면 건의서가 한층 더 큰 설득력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이 건의서 내용은 보다 알차게 다듬어져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의 국정운용 구상에 유용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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