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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는 '무대의 호랑이' 돼야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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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진=박종근 기자]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뒤부터 한 차례도 그 꿈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베를린 하모닉을 지휘하는 게 제 꿈이에요."

지난달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제2회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신예 여성 지휘자 성시연(31.사진)씨가 잠시 고국을 방문했다.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에 이어 연거푸 굵직한 콩쿠르에 도전하느라 지친 몸을 추스를 겸 오랜 만에 부모님도 만나기 위해서다. 직접 만나본 성씨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훤칠한 체격에다 인터뷰 도중 웃음보도 자주 터뜨렸다.

"지휘란 '장악하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죠. 지휘자가 무대로 걸어나올 때부터 단원들이 카리스마가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아챈답니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호랑이가 돼야 합니다."

솔티 콩쿠르 우승 직후 성씨에게는 국내외 교향악단에서 지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로테르담 필하모닉을 비롯, LA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볼티모어 심포니, 스톡홀름 로열 오페라 등과 일정을 협의 중이다. 내년 1월초 서울시향의 새해 첫 정기 연주회에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을 지휘한다.

또 10월부터는 2년 계약으로 미국 '빅 5'교향악단 중 하나인 보스턴 심포니(예술감독 제임스 레바인)의 부지휘자로 활동한다. 보스턴 심포니 126년 역사에서 상임 지휘자와 부지휘자를 통틀어 여성 1호다.

"평소 제임스 레바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이있는 표현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선뜻 오디션에 도전했습니다.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객원 지휘를 하러 보스턴에 오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고 해요."

콘서트 시즌 22주 동안 매일 출근해 연습을 참관하고, 예술감독이나 객원 지휘자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지휘를 못하게 될 경우 '대타(代打)'로 무대에 서야 한다. 해외 순회공연, 탱글우드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

"말러 콩쿠르 직후 입상자 연주회에서 현대음악 1곡, 말러 가곡 2개, 말러 교향곡 제1번 등 2시간 가까운 프로그램을 혼자서 지휘했어요. 그때 체력 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평소에 걷기, 요가, 헬스 등으로 체력을 다지고 있어요."

성씨는 부산 태생으로 서울예고와 스위스 취리히 음악원, 베를린 국립예술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초등학교 때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처음 접하고 감동을 받았고, 유학 시절 푸르트벵글러의 실황 DVD를 보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롤프 로이터 교수,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음악원에서 요르마 파눌라 교수를 사사했다.

"베토벤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자신의 음악에는 남성과 여성이 공존한다고요. 음악의 남성성과 여성성은 남자든 여성이든 관계없이 나름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음악을 좋아해요."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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