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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우리 아이 '엉뚱한 말' 경계선은 어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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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내가 친구들한테 사탕이랑 색종이랑 다 나눠줬어." 엄마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 세나(6)의 자랑을 듣곤 깜짝 놀랐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인 딸이 그랬다고 믿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견한 마음에 "씩씩하다, 잘했다"하며 한참 동안 얘길 나눴다. 그런데 대화 말미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있잖아… 실은 쑥스러워서 다른 친구한테 부탁했어. 걔가 다 나눠주고 난 옆에서 가만히 있었어."

세나 엄마처럼 사실로 믿고 싶었던 딸의 말이 거짓말로 드러났을 때 엄마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

유아.아동기는 상상을 현실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 감당키 어려운 갈등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도 배우게 되는 시기다. 정서 발달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막상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 부모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신의진 연세대(소아정신과) 교수는 "4~6세에 상상을 극대화해 모호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을 거짓말로 단정 짓기는 곤란하다"며 "맞장구 쳐주며 상상력을 북돋아줘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한 상태에서 나오는 거짓말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신 교수는 "위기를 모면하거나 타인을 괴롭히려는 등 목적이 분명한 거짓말일 경우 그 원인을 분명하게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례별 진단.대처법을 알아본다.

#사례 1. 다영(7.여) "친구가 때렸어" 소심한 → 아이라면 믿는 반응 보여야

다영이는 "유치원에서 친구가 수저로 이마를 때렸다" "소리를 질렀는데도 선생님이 못 들었다"는 등 억울했던 상황을 엄마에게 여러 차례 구체적으로 호소했다. 친구가 괴롭힌다며 유치원을 결석하기도 했다. 담임 교사에게 확인했지만 다영이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 제3자가 볼 땐 거짓말이지만 소심하고 여린 아이라면 누가 무심코 건드린 것도 자기를 때린 걸로 느낄 수 있다. 아이가 피해의식이 많다면 진지하게 "속상했겠네. 그 아이가 왜 그랬을까?"하며 그대로 믿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친구들과 많이 놀게 해 대범하게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평소 적극적인 스타일의 아이가 이랬다면 관심을 받고 싶어 거짓말을 한 것일 수 있다. 적절치 못한 관심 끌기에는 "그래?"하고 가볍게 지나간다. 애정 부족이 원인이므로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필요하다.

#사례 2. 호영(7.남) "수염이 나 면도해야 돼" → 상상력 키우기보다 단호하게

바람 때문에 코밑이 간지러운 것을 "수염이 났다"며 매일같이 면도해 상처를 내는 아이. 상처가 심해지자 부모는 결국 체벌까지 동원해 중지시켰다. 그래도 호영이는 "계속 수염이 난다"고 말한다.

☞ 일곱 살 나이의 상상력이 정상적으로 발달하면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표현력은 남다르지만 아직도 수염이 계속 난다고 믿는 것이나, 반복적으로 면도해 다치는 행동은 나이보다 조금 어린 모습이다. 상상을 키우기보다 위험을 막는 게 먼저다. 단호하게 "위험해. 다치잖아. 어른 되면 하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혹시 부모가 아이를 너무 애 취급하지 않았는지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사례 3. 준희(8.여) "아빠 바람피우나 봐" → 엄마와 경쟁의식 … 당장은 모른 척

어른용 장신구를 사달라는 아이에게 엄마는 "커서 결혼할 때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 후 준희 아빠가 새 시계를 차고 나타나자 준희는 "아빠가 몰래 딴 사람이랑 결혼했다"며 흥분했다. TV에 나온 여가수를 보며 "아빠한테 시계 준 여자"라고 떠들기도 한다.

☞ 8세인 준희가 장신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남녀관계에 대한 관심은 나이보다 어른스러운 편이다. 이 상황에서 당장은 모른 척하고 지나가도 된다. 그런데 딸이 과도하게 아빠를 친밀하게 여기고, 엄마를 경쟁자로 생각해 할 말일 가능성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부모의 고른 사랑을 받도록 하고,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를 해주는 게 좋다.

#사례 4. 수연(7.여) "아빠가 딴 여자 만난대" → 부모의 애정 바라는 것일 수도

야근이 잦은 맞벌이 부모 때문에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수연이. 최근 할머니한테 심각하게 "아빠가 엄마 없을 때 자꾸 다른 여자와 통화를 한다" "아빠가 그 여자랑 일요일에 ○○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근거 없는 얘기를 한다.

☞ 7세 때는 상상력이 풍부한 시기이므로 실제와 가상을 구별 못 하기도 한다. 때로는 상상을 더 실제처럼 느끼는 경우마저 있다. 당장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게 좋다. 아이가 부모에게 더 많은 애정과 대화를 바라고, 또 그에 대한 욕구 불만으로 불안해 하는 상황일 수 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한다.

최유정 패밀리 리포터 (likko@dreamwiz.com)
※도움말=신철희 소장(신철희아동청소년상담센터)
신의진 교수(연세대 소아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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