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억 인출 책임공방/제일생명­국민은행 엇갈린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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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입금만 일치 출금시기·금액 틀려/잔고 “0”… 서류상으로도 완벽 국민/“20억 이외엔 인출한적 없다” 제일
2백30억원의 은행예금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국민은행과 예금주인 제일생명과의 서로 틀린 주장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느냐하는 것은 당장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뿐 아니라 은행이 거의 무조건 거액 예금주의 편의를 보아주는 등의 금융관행에 앞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예금주가 전문적인 금융관행을 잘 알고 있는 보험회사라는 점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예컨대 컴퓨터에 의해 찍혀나온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쓴 수기 예금잔액증명을 거의 반년동안이나,매달 받아놓으면서 이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다.
또 자산운용을 하면서 단 하루,단 0.01%의 의 이자에도 민감하게 움직이게 마련인 보험회사가 2백억원이 넘는 돈을 6개월씩이나 연 1% 이자만이 붙는 보통예금에 넣어놓고 있었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
이상은 제일생명측이 일반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점이지만 국민은행측 주장에도 상식에 어긋난 점이 있다.
정 대리가 수기잔액증명이나 가짜 통장을 만들어 준 것이 단순히 거액예금주의 요청에 따라 「편의」를 보아주기 위해 한 것이지,부정한 돈의 입출금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자신의 상급자에게 이를 보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표에서 보듯 두 금융기관의 주장이 입금에서는 사실상 일치하고 있으나,출금에서는 날짜와 금액 어느 것도 서로 같은 것이 없다.
결국 출금에 관한한 2중장부,통장이 작성되어 있는 것이며 양 금융기관은 서로 자기네가 갖고 있는 장부,통장의 근거로 자기주장을 펴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양쪽 주장에 대한 진위여부는 수사결과 드러나겠지만 은행이 2백30억원의 예금을 물어내야 하느냐의 여부는 84년 상업은행 혜화동지점 수기통장사건(명성사건)처럼 복잡한 민사소송을 거쳐야 할 것이다.
예금주들에게 공금리 이상의 웃돈을 주면서 은행대리가 수기통장을 발급했었던 명성사건때는 결국 「예금주나 은행대리나 사실상 돈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는 사실 때문에 은행이 예금을 물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얼마든지 경우가 다를 수 있어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은행측은 현재 예금원장·원래의 통장과 동일한 인감이 찍혀있는 예금청구서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일생명측은 예금원장과 예금청구서에 찍힌 도장은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며 정 대리가 이를 위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토지사기단이 은행대리와 짜고 제일생명의 인감을 도용해 은행전표를 꾸민후 제일생명에는 사실과 다른 2중장부를 만들어놓은 것이라면 법적 책임에 대한 문제는 법률전문가들 끼리도 큰 논란을 벌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은행측이 주장하는 대로 ▲올 4월 매도인 정명우와 매수인 하영기가 정영진 입회아래 작성한 것으로 되어있는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매매 예약시 「지급한」 2백30억원과…』라고 씌어있는 사실 ▲은행 전산자료에는 올 2월1일 이미 제일생명측이 은행컴퓨터를 통해 예금잔고가 0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근거가 있다는 사실 등이 은행측에 유리한 증거들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매매계약서 자체가 사기라든가,통장을 정리했던 사람이 사기단의 한사람이었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의 열쇠는 토지사기단의 범위에 어느 누구까지가(구체적으로 제일생명과 국민은행의 관계자들) 연루되어 있느냐,사기단의 배후에 더 큰 「거물」이 있느냐 여부에 있고 이에 따라 은행과 보험사가 벌이고 있는 2백30억원에 대한 책임소재도 가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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