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장외외교(92올림피아드 바르셀로나: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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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상급 50여명 자국현안 “노크”/경제난 중남미·유고사태 등 물밑 대화/32년만의 복귀 남아공 발걸음 바쁠듯
개막 한달을 앞둔 지난달 25일 밤 11시가 지난 바르셀로나올림픽조직위원회(COOB) 국제국.
올림픽주경기장 몬주익스타디움 전면에 위치한 COOB건물중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사무실이다. 야간에는 안전관계상 COOB출입자체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낮시간 역시 「관계자외 출입엄금」이라는 붉은 글씨의 통제표시가 이곳을 찾는 방문객을 일순 긴장시키는 곳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20여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텔렉스용지와 서류를 든 남녀요원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전화를 붙들고 열심히 얘기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뭔가 비밀스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직감을 받게 된다.
『국가정상들의 올림픽 예방을 준비하는 곳이니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묻고 싶은 사안들이 많을줄 알지만 대답할 수 없는 입장을 이해해주십시오.』
네차례의 인터뷰요청끝에 가까쓰로 접견이 이뤄진 호세 코데르 국제국장은 첫마디부터 곤란한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국가수반들의 동정은 외교관례상 공식발표가 있기까지는 알아도 밝힐 수 없으며 특히 세부적인 사항은 안전문제때문에 더더욱 언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 기간중 바르셀로나 방문일정이 확정된 국가정상은 대회개막을 19일 앞둔 현재까지 30여명. 여기에 왕실귀족 5∼6명과 벨기에 외무장관,독일 내무장관 등 각료급 50여명도 다양한 목적으로 바르셀로나를 찾을 예정이라고 코데르국장은 밝히고 있다.
우선 대회개막 이틀을 앞둔 23일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되는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에는 유럽에서 스페인·포르투갈을 비롯,멕시코·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페루·베네수엘라·콜롬비아 및 쿠바에 이르기까지 중남미 전지역 19개국 정상 등 모두 21개국 정상들이 회동,이틀간에 걸쳐 위기상황에 처한 중남미지역의 제반문제와 향후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멕시코 과달라하라회담에 이어 두번째 열리는 바르셀로나정상회담에서는 심각한 경제난,빈곤의 만연,마약 등 공통관심사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며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쿠바의 카스트로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으로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외채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국가들은 미국 주도하의 경제체제 재편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중남미지역의 결속으로 공동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반면 스페인은 이들 국가들이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이자 언어·문화·역사 등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점을 십분 활용,이들과 함께 지역블록을 형성함으로써 EC에서의 발언권 강화를 내심 노리고 있다.
EC 12개국중 상당수 국가정상들과 외무장관 등 주요 각료들도 대회기간중 바르셀로나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고,발트해 3국 대통령과 데클레르크 남아공대통령도 스페인정부의 공식초청을 받아놓은 상태여서 이들의 외교적 행보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C정상들은 「유럽의 화약고」로 부상한 유고문제에 대해 물밑대화를 나눌 것이 확실하다고 외교소식통들은 전망하고 있다. 특히 60년 로마올림픽이후 32년만에 올림픽에 복귀한 남아공의 데클레르크대통령은 50여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이번 올림픽을 국가외교기회로 활용한다는 방침아래 각국 정상들과 공식·비공식접촉을 갖는 등 분주한 발걸음을 계속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기에 더욱 이채로운 것은 소련붕괴의 주역인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이 나란히 올림픽개막식에 참석한다는 점이다.
댄 퀘일 미국부통령은 개막식 참석이 확정됐고,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아직 최종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나 부시대통령은 폐막식 참석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태우대통령도 최근까지 바르셀로나올림픽 참석을 위해 스페인정부측과 의전문제 등을 협의했으나 국내여론을 의식,막판에 포기했다.
2000년 올림픽유치 희망도시들이 벌이는 외교전도 치열할 전망. 차차기올림픽 유치를 위해 벌써부터 로비전을 펼쳐온 북경(중국)·베를린(독일)·시드니(호주)·맨체스터(영국)·브라질리아(브라질)·이스탄불(터키)·밀라노(이탈리아) 등 7개 도시는 중앙정부차원의 대규모 사절단을 바르셀로나에 파견,대IOC위원 로비와 함께 정부차원의 외교채널을 동원,총력전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말레이시아국왕,보드앵 벨기에국왕,룩셈부르크의장대공,히로노미아(호궁) 일본왕세자 등 왕실귀족들도 개막식을 비롯한 각종 공식행사 참석이 확정된 상태다.
『바르셀로나는 올여름 국제외교의 중심지이자 세계수도로 각광을 받게될 것입니다.』 코테르국장은 득의에 찬 표정으로 인터뷰를 끝냈다.<바르셀로나=문일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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