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산등록을 기피하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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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원 상당수가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등록을 하게 돼있는 의원들중 법정기한내 등록을 안한 사람이 무려 1백9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들의 미등록은 단순히 사무적 차원의 실수나 태만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는 어렵다. 등록서류는 이미 한달전에 배포됐었고 등록을 안한 사람중 연기신청을 낸 사람은 고작 5명뿐이라는 사실을 보면 나머지 1백여명이 고의로 등록을 기피했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이들의 미등록을 왜 굳이 의심의 눈으로 보는가 하면 이런 현상이 유독 14대국회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2,13대 국회에서도 굳세게(?) 등록을 미룬 의원들이 상당수 있었고 국회사무처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1년반이 되도록 등록을 안한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의원들중에는 재산등록을 싫어하고 미룰 수 있는데까지 미뤄보자는 풍조가 분명히 있고,그런 전통이 14대국회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재산등록을 싫어 하겠는가. 남이 들여다 보면 뭔가 꺼림칙하거나 컴컴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재산의 일반공개도 아닌,등록해봐야 비밀이 완벽히 보장되는 등록일 뿐인데도 그마저 기피하는데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선거운동때 언필칭 깨끗한 정치,청렴한 국회의원을 표방하지 않았을리가 없다고 볼때 이들의 행위는 분명 겉다르고 속다른 것이다.
우리는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를 규정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지난 88년 정부에 의해 정기국회에 제안됐으나 국회가 2년여 끌기만 하다가 13대국회 임기종료로 그냥 폐기시킨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수서사건·뇌물외유사건 등이 터졌을 때도 여야 정당에서는 재산공개제 방침을 정하는 등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유야무야로 끝났다. 이처럼 「재산」에 관한 한 국회의원들은 신용을 잃은 것이 지난 경험이다.
지금 사회분위기는 12,13대 국회초기와도 다르다. 지난 국회와 정치행태에 신물이 난 나머지 전과는 좀 다른 정치,좀더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초선의원 12명의 자정선언에 쏟아진 갈채를 못보는가. 이런 사회분위기를 생각할 때 의원들의 재산등록 기피는 12대,13대 당시처럼 결코 어물어물 넘길 일이 아니다.
우선 이들이 일정기간 계속 등록을 기피하면 법대로 국회윤리위의 징계에 회부해야 한다. 또 이들의 소속정당도 가만 있어서는 안된다. 당차원의 경고·불이익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재산공개제의 채택을 더이상 미뤄서도 안된다. 대선을 앞두고 듣기좋은 소리만 할게 아니라 이런 실질조치를 해야 정치의 신뢰회복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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