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엽기 클래식 "100분 동안 100번 웃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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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현악 트리오 '플럭(Pluck)'

- 23~ 27일 오후 7시30분 롯데월드 예술극장, 3만3000원.

- 5월 29일~ 6월 10일 평일 오후8시, 주말 오후3.7시 서울열린극장 창동, 3만원.

바이올리니스트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을 연주하는데 정신없이 속도가 빨라진다. 곡이 끝나갈 때쯤 활에서 송진처럼 보이는 흰 가루가 풀풀 날린다. 속도가 우스꽝스러울 정도까지 빨라지면 송진 가루는 연주자의 얼굴을 뒤덮어버린다. 연주를 끝내고 태연히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에 객석에서는 실소가 터진다.

코미디 현악 트리오 '플럭(Pluck)'의 연주는 다 이런 식이다. 헝가리 랩소디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서 의자를 찾아 엉덩이부터 들이밀지만 이미 반으로 접혀있는 의자에 일격을 당한다. 케이크와 쿠키를 꾸역꾸역 먹느라 바이올린을 한 소절 이상 켜지 않는가 하면 첼리스트는 팔을 휘두르는 과장된 감정표현을 하느라 정작 소리를 못 내기도 한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이뤄진 영국의 현악 3중주단 플럭은 클래식의 틀을 깨고 마임을 섞었다. 단순히 엽기적인 공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잘 보면 유럽식의 뒤틀린 코미디가 숨어 있어 통쾌하다. 바이올린을 불에 태우거나 관객을 무대에 올려 첼로로 아무 음이나 그어대게 하는 부분에는 "이러면 왜 안돼?"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 지나치게 엄숙한 척해서 웃기거나 구겨진 표정으로 감정을 과장하는 부분은 "보통 클래식 공연과 뭐가 다른가"를 묻는 반어법이다.

플럭은 2003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부문에 참가하면서부터 유럽에서 꽤 인기를 얻은 팀이다. 영국의 주간지 '타임아웃'은 "달콤한 풍자와 감미로운 음악의 조화"라고 평했고 선데이 타임스는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수준 미달의 음악이 아니면서도 기상천외하다"고 높이 샀다. 이번 한국 공연은 호주.말레이시아.미국 등을 거친 세계 순회공연 중 하나.

생상스의 '백조',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 등 귀에 익숙한 음악을 썼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음악에 거침없이 변형을 가하고 마음대로 연주하기 때문에 듣기 좋고 완성도 높은 선율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100분 동안 100번 웃기겠다"는 이들의 포부는 높이 살 만하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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