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대통령 진단」/이대 김용서교수 화제의 논문 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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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공 인기정책이 국력소모”/6·29선언은 노­전합작 선거전략 불과/88년 국회청문회 「국가권위」실추시켜
대통령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각당 후보 못지않게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진단이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한국논단』(발행인 이도형)5월호에 이대 김용서교수가 쓴 「역대 대통령진단」(원고지 1백50장 분량)이 정계뿐 아니라 지식인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어 그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우리는 이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연계되는 권위주의체제와 윤보선·최규하·노태우로 연계되는 「민주화」체제를 비교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
동구권이나 소련에서는 권위주의체제로 통합을 유지해오던 국가들이 붕괴됨으로써 지역적 분열과 민족적 분열현상이 새롭게 대두돼 내전상태로 변해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 흐름이나 위기적 추세에 둔감한 우리 지도층은 닥쳐올 재앙에 대비할 체제를 구축하기는 커녕 아직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됐느냐의 시비에만 몰두하고 있다. 더욱이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사기성 테크닉개발에만 여념이 없으며 허세·과장의 선전만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기만에 빠져 희·비극을 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6·29선언은 형식적인 의미에서 5공시절 여당인 민정당대표(노태우)의 발언을 전두환대통령이 보증·확인함으로써 성립된 집권세력의 정책노선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거부하거나 민정당의 최고 정책결정기관에서 거부됐다면 성립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이미 그것은 「노태우」의 것도,「전두환」의 것도 아닌 「5공집권세력」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5공 집권세력이 민주화의 의지를 실현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는 일종의 「선거전략」에 불과하며 전두환대통령의 경우 선언자체보다 단임제 실현에 더 큰 무게를 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6·29선언은 본래 5공세력이 자진해서 착안한 것이 아니라 당시 최고조에 달한 투쟁세력(국민)에 항복한 것이며 집권세력은 이같은 항복을 집권연장에 유리하도록 이용하기 위해 두 김씨의 분할구도로 직선제와 김대중씨 사면을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갖고 있다.
동시에 노태우씨가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의 쇼를 함으로써 국민의 인기를 획득했다는 점에서 「인기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후의 모든 정책이 이에 의해 좌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같은 인기주의가 6공에 들어와 전정권의 권위주의세력 잔재를 말살하라는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지 않을 수 없게 했고 노­전간의 분열을 불가피하게 만들어 버렸다.
노 대통령과 측근세력은 자기들의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됐고 그 이미지는 바로 국민이 원하는 「민주화」였다. 그들은 이미 오점을 남긴 전정권과의 유대를 유지하는한 국민의 인기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5공의 권위주의에 대비되는 민주화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5공과의 단절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도 이면에서는 5공의 주요인물에 대해 심정적인 지지와 유대관계의 지속,또는 정치적 자금·공직제공 등의 방법으로 반발을 무마시키고 고단위 이중성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6공 집권세력은 마찰과 손실을 각오하면서도 병리·위기요인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책임과 명예를 건 전투적 자세(전두환식)보다 마찰이나 대결을 최대한 회피하며 시간을 끄는 달관적 태도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88년 가을의 국회 청문회가 남긴 가장 큰 해학은 이 나라의 모든 권위를 총괄적으로 붕괴시킴으로써 권위가 전제될때만 가능한 질서유지·법의 지배 등 통치질서를 훼손시켜 버렸다.
몇몇의원을 제외하고 국회의원들의 천박하고 비열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됐을뿐 아니라 통치현실의 이면에 감춰진 부패·부도덕한 면들이 드러남으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를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박정희정권은 물론 전두환정권에 있어서까지 정치적 불만층이 증대돼 갔으나 망국의 혼란으로 발전하지 않았던 것은 경제를 위한 희생논리로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안정이 유지돼온 탓이다.
반면 노 대통령은 청문회·통일문제 등 「정치논리」지배의 현실을 조장시킴으로써 이에 따른 부작용과 병리현상으로 물가앙등·국제수지 적자누증 등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6공화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고 종국에는 압살하는 단계로 발전했으며 그 원인과 책임은 상황적 요인보다 노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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