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장밋빛' 좇는 재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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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 2월 5일. 기자가 처음 출입하게 된 과천 청사 브리핑 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첫날에 '사회 초년병의 평균 연령을 2세 낮추고, 퇴직자의 평균연령은 5세 늦춘다'는 이른바 2+5 제도가 발표됐다. 이틀 뒤에는 '2단계 국가 균형발전 방안'이 터져나왔다. 지방으로 본사를 옮기면 다양한 재정.세제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2030년까지 1100조원이 드는 '비전 2030'도 나왔다. 지난달에는 한 해 2조원 이상이 드는 기초노령연금제도가 국회를 통과했다.

현 정부는 정말 쉴 새 없이 각종 비전과 복지 정책을 쏟아냈다. 그리고 하나같이 몇 조원 정도는 애들 '껌 값'으로 취급했다. 기자는 기사를 송고하면서도 툭 하면 몇십조원씩 드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또 내 주머니에서 돈을 털어가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어느 정책 하나 흠잡기 힘들다. 곳곳에 저출산과 고령화, 양극화에 대처하는 현 정부의 문제 의식과 열정이 배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다. 어마어마한 사업에는 막대한 돈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는 '이상(理想)에는 강하고 현실(現實)에는 약하다'는 좌파정권의 맹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쓸 줄만 알았지 어떻게 벌어들일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현 정부가 슬그머니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을 덮어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느새 기세 좋게 발족시킨 조세개혁 조직은 사라져 버렸다. 정부가 검토하는 시늉을 낸 각종 부가세 신설, 주식양도차익 과세 등도 슬그머니 증발돼 버렸다. 청와대가 근사한 비전 2030을 발표한 뒤 이를 실제로 챙기는 장면도 잘 보지 못했다.

장밋빛 구상만 잔뜩 펼쳐놓고 정작 세금을 늘리려니 "부담스럽다"며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증세론으로 비화될까 두렵다" "선거 때문에 정치권 협조를 구할 수 있겠느냐"며 재경부도 그냥 넘어가 줬으면 하는 눈치다.

앞으로 복지 지출은 늘게 돼 있다. 반면 인구감소와 세율 인하라는 국제적 추세에 따라 세수(稅收) 기반은 갈수록 취약해진다.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중장기 조세개혁에 총대를 메야 한다. 그런데도 급증하는 국가채무를 보도하면 재경부는 손사래 치기 바쁘다. 이런 모습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재경부는 조세개혁이 다른 경제 부처가 담당하는 일로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