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청천(靑天)의 유방(乳房)'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일찍이 청천에 달려있는 불룩한 유방을 본 시인이 있었거니와, 나는 오늘 물기 어린 봄하늘에 총총 매달린 젖꼭지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의 팥죽빛 젖꽃판에 달라붙어 쪽쪽 젖을 빠는 어린 공기의 입술을 보았다 지난해 자욱했던 감꽃이 오그라붙은 별무늬 감꼭지, 이 세상 그 어떤 꽃보다도 더 꽃다운 감꼭지는 뱀 허물처럼 잔주름 많은 둥치에 빈 젖을 달고 있다



그럼요, 천지에 유방뿐이겠어요? 봄 하늘 크나큰 둥근 유방에 산봉우리 젖꼭지가 수천 개, 나는 열 개의 유방을 가슴에 달고 있는 거대한 여신도 보았어요. 어제는 수천만 꽃봉오리들 말캉칼캉 젖을 빨더니만, 어라? 오늘은 저 공기의 입술들. 꽃이 낳은, 꽃을 낳은, 저 불룩한 어미들 속에 열매가 자라고 열매 진 자리에 다시 서는 저 젖꼭지!

<김선우.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