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한 삭이는 「백과부 할머니」/춘천의 열녀 이복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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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6·25때 경찰 남편잃고 40여년 소복생활/남침당일 38선 근접지역서 남편 전사/농사일·외출때 모두 흰옷차림/현충일마다 충렬탑 찾아 참배
「백과부 할머니」.
6·25전쟁으로 경찰관이던 남편을 잃은지 40여년이 지나도록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복을 입고 생활하고 있는 이복순할머니(65·강원도 춘천군 북상면 조교1리)를 두고 마을 주민들이 부르는 별칭이다.
이 할머니는 3시간 거리의 춘천에 나들이를 할때는 물론 웬만한 일에는 모두 소복차림이며 산나물을 캐러 가거나 농사일을 할때에도 단색의 옷을 입을뿐 무늬웃을 입지 않는다.
이 할머니는 37주년 현충일인 6일에도 미망인회 회원들과 나누어 먹을 취떡을 해가지고 소복차림으로 춘천시 우두동에 있는 충렬탑에 참배하고 헌화했다. 이 할머니가 청상이 된 것은 23세때인 50년 6월25일.
16세에 3세 위인 최성환씨와 혼인한 이 할머니는 도청에 다니던 남편이 42년 경찰에 투신,당시 38선에서 직선거리로 4㎞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산면 내평지서에 근무하다 전쟁이 발발한 이날 오전 8시 인민군의 공격을 받아 동료 11명과 함께 전사하자 남편의 시체옆에 드러누워 남편과 같이 죽을 것을 고집했었다.
동네 사람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이 할머니는 남편의 시체를 끌며 엎으며 8㎞나 떨어진 조교리 시댁으로 모셔와 장례를 치렀다.
22세때 임신을 했었지만 열병을 앓아 한약을 잘못 복용하는 바람에 유산돼 자식이 없었던 이 할머니는 남편 사후 친정에서 재혼을 하라고 권유하자 몇년간 친정 나들이조차 하지 않는 등 열녀의 길을 택했다.
이 할머니는 1천여평의 종중땅에 농사를 짓고 틈이 나는대로 산나물을 뜯어 팔아 2명의 시동생들을 성혼시켰으며 56년 최헌길 강원도지사로부터 열녀 표창을 받는 등 10차례의 표창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남자라고는 친척들과만 이야기를 나눌뿐 출장소직원 등 외부 남자와는 먼발치에서조차 피해다니는 생활을 계속해오는 등 남편에 대한 그리움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남편의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한사코 반대,곁에 두어온 이 할머니는 4년전 남편의 묘자리가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삽다리골에 있는 묘를 바랑골로 옮기면서 자신의 자리도 함께 만들었다.
이 할머니는 지난 71년 바로 아래 시동생 아들 최성배씨(37·춘천시 후평동)를 양자로 들였으며 이 아들이 함께 살자고해도 남편이 누워있는 고향을 등질 수 없다며 혼자 살아가고 있다.
이 할머니는 매년 현충일을 맞아 충렬탑을 참배하러 배를 타고 춘천에 갈때마다 자신과 남편의 추억이 담긴 내평지역이 이제는 소양댐으로 수몰돼 안타까움을 더해주지만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사람이 어디 나뿐이냐』며 망부의 한을 삭이고 있다.<춘천=이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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