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분쟁 해결사로 나선 나토/역외파병합의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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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탈냉전시대의 「역할」만들기 자구책/“미의 유럽영향력 유지 포석” 분석도
4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무장관회담에서 유럽내 분쟁지역에 나토차원의 평화유지군 파견에 합의한 것은 실질적으로 나토에 역외파병의 길을 연 첫번째 결정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날 오슬로에 모인 나토 16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요청에 따라 나토군을 유럽내 분쟁지역에 평화유지 및 회복을 위해 파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내용을 공동성명에 담아 발표했다. 즉 유럽내 모든 나라와 미국 캐나다 등 52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범유럽안보협력체인 CSCE가 유럽내 타지역의 분쟁종식을 위해 나토에 파병을 요청하면 나토는 이를 근거로 나토 회원국이 아닌 나라에도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40여년간의 룰을 깬 것이다. 이는 우선 두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나토의 역할변화다. 소련 등 동유럽공산진영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서유럽 방위를 목적으로 창설된 나토는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해체와 소련 붕괴로 냉전시대의 군사적 위협이 현저히 감소함에 따라 존재이유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나토의 기능이 종래의 회원국방위에서 유럽의 평화유지로 중심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미국의 유럽잔류다. 냉전종식과 더불어 유럽통합이 가속화하면서 유럽에 있어 미국의 역할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미 유럽 각국은 정치동맹을 통한 유럽차원의 공동방위정책 수행에 합의했고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독불합동군을 창설,궁극적으로 유럽합동군의 모체를 자임하고 나섰다. 유럽에서의 영향력 상실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나토의 존속을 통한 유럽잔류 명분을 심각하게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한 셈이다.
이번 회의에서 나토차원의 평화유지군 파견이 합의된 것은 날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유고사태가 직접적 배경이 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유고사태의 조속한 종식 필요성을 언급한데서도 이 점은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파견된 1만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의 무기력함을 예로 들면서 내전종식을 위해 실질적 군사개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나토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의 실현에는 아직도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고사태의 급박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의에서 평화유지군의 역외파병과 관련한 구체적 합의가 일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직도 내부적으로 상당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우선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나토차원의 구체적 실행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그다음 분쟁당사국의 요청에 대한 CSCE의 파병여부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절차가 끝나 나토의 깃발을 단 최초의 평화유지군이 유고에 파병될 때 쯤이면 이미 유고내전은 막을 내린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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