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공건물 활용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봄·가을 등 특정시기, 특정 시간대에 수요가 집중되는 것을 노려 바가지 요금 등을 강요하는 예식장의 횡포를 뿌리뽑기 위해선 단속강화 못지 않게 예식장만을 고집하는 결혼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즉 시민공원·구민회관 등 공공시설을 예식장으로 활용, 예식장 집중을 막아야 하며 당국은 시민들이 공공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폐백실 등 부대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형식적인 행정단속과 비현실적인 조항으로 가득찬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도 개정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혼문화=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6만2천건의 결혼 중 예식장을 이용한 결혼은 전체의80%인 5만여건.
아직도 야외나 공공시설을 이용한 결혼보다 모든 예식시설이 갖춰진 예식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서울시는 예식장 다양화를 위해 90년9월부터 시내 각종 공공시설 87개를 무료예식장으로 개방하고 있으나 지난해 이용실적은 전체 결혼건수의 0.2%에 불과한 1천4백30건에 그치고 있다. 이는 예식장사용료와 웨딩드레스 등 부대물품을 무료로 대여받지만 폐백실·피로연장소등 부대시설이 전무해 이용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예식장무료대여를 계속 확대해나갈 방침이지만 아직은 부대시설 등이 미비하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 많아 실효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단속소홀=지난해 서울시가 시내 1백34곳의 예식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단속실적을 보면 총단속 횟수는 8백29차례에 이르고 있으나 불법 사례 적발 건수는 25건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고발과 허가취소는 각각 1건, 영업정지는 2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21건은 시정 조치하는 아량(?)을 베풀어 서울시의 예식장 횡포에 대한 단속이 형식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금품거래에 의한 눈감아주기 행정이라는 의혹까지 사고있다.
또 각 구청 가정 복지과 요원들이 매주 관내 예식장 단속을 실시하고 있지만 식장의 과다화환 전시나 고시 가격 게시 여부만을 확인하고 있을 뿐 가격 준수 여부나 부대 시설 강요 여부는 확인조차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각 구청측은 단속 인원 3∼4명으로 일일이 점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형식적 점검인줄 알면서도 방법이 없다는 입장.
서울 K구청의 경우 지난달 1개조 2명의 공무원이 관내 예식장을 상대로 4월 여덟차례, 5월 여섯차례의 단속을 폈으나 고시요금을 게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 한건 경고를 주는 개가(?)를 거두었을 뿐이다.
◇법규미비=69년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시킨다는 취지로 제정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은 73년과 80년 두차례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인 조항으로 가득차 있다.
현행 법령은 법정금지사항에▲청첩장 등 인쇄물에 의한 하객초청▲화환·화분 기타 이와 유사한 장식물의 전열·사용 또는 명의를 표시한 증여▲호텔 등에서의 피로연▲답례품 증여 등을 넣고 이를 위반할 때에는 2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항을 준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고 단속 자체도 없어진지 오래다.
서울시가 모법에 근거, 81년 고시한 「예식장 임대료·수수료 등의 최고한도액」을 보면 식장임대료는 좌석당 4백원씩 최고 2백50석을 넘지 못하며 폐백실 사용료는 최고 1만5천원으로 규정하고있다.
또 사진은 컬러 8×10 1조(3장)가 2만1천원, 스냅사진 3×4 20장 1만5천원, 피아노 수수료 6천원, 녹음비 3천원, 장갑·생화·방명록 등이 2만원 등으로 돼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2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한다.
그러나 위반사례가 적발되더라도 실제 부과되는 벌금액은 50만∼1백만원선에 그치고 있고 행정조치 또한 경고·시정 지시 등에 국한되고 있으며 예식장측은 이점을 악용, 규정가격보다 3∼10배까지 비싼 요금을 받고 있어 법 자체에 대한 현실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최형규·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