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경영인들 공익재단 설립 바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미국 전문경영인 사이에서 공익재단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회사 창업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공익재단 설립에 최근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이 뛰어들고 있다.

그간 미국의 대표적인 공익재단은 '자동차 왕' 헨리 포드,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 같은 각 분야의 전설적 창업자들이 설립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회사 주인인 창업자들이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이들 밑에서 일했던 전문경영인들은 월급쟁이 사장 수준에 머물렀던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로베르토 고이수에타(코카콜라.재단 출연액 3억8800만 달러),루이스 거스너(IBM.7500만 달러), 존 리드(시티은행.6100만 달러) 등 대기업 전직 CEO는 물론이고 테리 세멜(야후.2440만 달러), 존 체임버스(시스코.1650만 달러) 등 현직 전문경영인들까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속속 설립하고 있다. 이들은 빈민구제, 장학재단, 예술지원, 제3세계의 빈곤 및 질병 퇴치 등 각종 목적의 공익재단을 세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전문 CEO들이 과거의 기업 창업주 이상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경영 능력이 회사의 운명을 가르는 최대 요소라는 논리가 굳어지면서 미 대기업들은 스톡옵션에 특별보너스 등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고 CEO들을 모시고 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0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린 CEO들은 최소한 85명은 넘는다고 보도했다. 또 유명한 CEO들은 은퇴시 2억 달러 이상을 별도로 챙긴다는 것이다.

공익재단 설립이 사회적 명성을 가져다준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실제 미국에서는 어떤 형태의 공익재단이라도 세우면 자선사업가로 존경받는 게 보통이다.

공익재단을 만들면 자손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점도 설립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단을 설립한 본인이 세상을 뜨더라도 자식이나 손자들이 재단 운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CEO들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재단을 세우는 경향도 있다고 WSJ은 소개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