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스 위임장 들고 주총 참석한다고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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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2면

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주주총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는 투자자들이 더러 있다. 보유주식이 많지 않은 투자자는 주총에 참석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회사가 적대적 M&A의 대상이 되거나 자본감소 등 특별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 회사나 공격자는 발을 동동 구른다.

적대적 M&A의 경우에는 한 주라도 더 확보해야 승리할 수 있고, 자본감소와 같은 특별 결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총 주식수 3분의 1 이상의 출석과, 출석 주식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소액 주주들에게 의결권을 위임해 달라고 매달린다. 다른 주주로부터 위임장을 받으면 주식을 보유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주가 아쉬운 공격자는 팩스 위임장을 받는가 하면, 공격자의 의결권 수를 줄여야 하는 방어자는 위임장에 신분증 사본이 없다는 이유로 주총 참석을 거부한다. 그래서 총회장 입구에서 위임장의 유효성을 둘러싼 설전은 보통이고, 무력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대법원은 명쾌한 기준을 제시했다. 위임장 원본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위임인의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지 않는다고 위임장의 접수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본이나 팩스로 전송받은 위임장은 원본이 아니므로 접수를 거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3다29616 판결). 상법 제368조 제3항은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되도록 쉽게 하기 위해 대리인은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서면의 양식이나 첨부서류에 관해 아무런 추가적인 요건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판결의 근거다.

대법원이 위임장 원본을 요구하는 것은 위조ㆍ변조를 쉽게 식별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원본이란 작성자가 서명하거나 날인한 것을 말한다. 날인 행위 자체는 위임이 가능하겠지만 서명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따라서 의결권 위임을 권유하는 회사에 대해 전화로 위임에 동의하였지만 본인이 직접 서명하지 않고 회사 직원에게 서명을 부탁한 경우 이는 적법한 위임장 원본으로 볼 수 없다. 코스닥 회사 중 회사 직원이 주주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주주 대신 서명한 위임장을 작성해 사문서 위조죄로 형사 고소된 경우도 있다. 주총 과정에서 이처럼 법률을 위반한 사례가 발생하면 주총 결의는 취소될 수 있다. 따라서 주주총회 의결권에 관한 위임장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주주 본인으로부터 서명이나 날인된 원본을 받는 것이 안전하다.

위임장을 이용하는 경우 적은 비용으로 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그런데 상장회사나 코스닥회사의 주주 10인 이상에게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할 때에는 증권거래법에 규정된 엄격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주총 소집 통지를 받고 참석하지 않거나 위임장을 제공하지도 않을 때 주주의 의결권은 사라져버릴까? 증권예탁원이 주총에서 다른 주주들의 찬성과 반대의 의결권 수에 비례해 예탁주식의 의결권을 분할해서 행사한다. 따라서 위임장을 제공하지 않은 주주들도 의결권을 행사하는 결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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