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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동북아 영향력 점차 축소 한·중·일 ‘안보 대화’ 시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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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26면

왕지쓰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원장

지난달 나는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했다. 미국의 대외정책, 그리고 중ㆍ미 관계 등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미국 방문 중 나는 한 가지 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미국 정가의 인사들이 북핵(北核) 문제 해결과 관련, 2ㆍ13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준 적극적인 역할에 대해 모두 감사와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미국 대외정책의 주요 관심은 여전히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중동의 여러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 또한 남아메리카를 다시 중시하자는 분위기가 미국 정가에서 새롭게 일어나고 있었다. 중ㆍ미 관계와 관련해선 미국의 관심은 온난화 등 지구의 기후변화와 수단에 대한 중국의 정책 등의 문제로 옮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북핵 문제에 대해 미국의 여야 모두는 마치 한시름 놓았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적지 않은 국제문제 평론가들은 2ㆍ13 합의의 승자는 북한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북한은 영변(寧邊)의 핵시설 폐쇄와 동결에 동의하고, 또 국제 핵사찰을 받기로 했을 뿐인데, 이미 한국의 원조와 협력을 얻었고, 또 남북 관계를 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적인 양자 외교접촉 틀을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입장을 완화시킨 데 비해 북한으로부터는 이렇다 할 실질적인 보답을 챙긴 게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 같은 사실을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일까. 또 오히려 자신들의 부담이 줄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우선 미국의 국내 정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 국회는 민주당 인사들에 의해 점령된 상태다. 미국 국민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행태에 대해 불만이 많다. 특히 이라크 문제 처리에 대한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추세다. 미 정부 내 몇몇 매파 인물들은 이미 사직했고, 이를 대신해 온건파 인물들이 북핵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2ㆍ13 합의의 진전은 이미 욕을 먹을 대로 먹고, 또 참담하게 명맥을 이어가던 부시 행정부의 외교에 몇 점을 보태주는 효과가 있다. 적어도 민주당 인사들이 잠시 동안은 부시를 공격할 수 없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다음 요인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부시의 임기를 꼽을 수 있다. 부시가 집권할 기간은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현재 차기 대통령 선거의 서막은 이미 열린 상태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은 머지않아 전력을 다해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북핵 문제가 짧은 시간 내에 중대한 진전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또 크게 악화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평양과 핵시설 폐쇄 문제를 놓고 1년여 정도 ‘고양이가 쥐 가지고 놀기’ 식으로 실랑이를 벌이며 시간을 끈 뒤, 더 큰 난제는 차기 미국 정부에 넘길 것이다. 한 미국 관리의 말에 따르면, 양자 관계에서 진정으로 기념비적인 진전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북한이지 미국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고농축우라늄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워싱턴은 평양과의 수교를 결코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셋째로, 2ㆍ13 성명에 따라 만일 북한이 합의를 이행한다면, 중국ㆍ한국ㆍ러시아ㆍ일본 등 4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경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원조를 책임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북한의 태도가 바뀐다면, 중ㆍ한ㆍ러ㆍ일 4개국과 유엔은 미국과 함께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또 북한을 감시할 것이다. 중국 등의 국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줄곧 두 가지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다. 이것이 의미하는 대상은 북한이다. 둘째는 평화적인 해결이다. 이렇게 말할 때 염두에 두는 나라는 미국이다. 현재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가할 위험성은 크게 내려간 상태다. 그렇게 되자 이젠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할 것인지가 핵심 문제가 됐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실제로는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할 것이란 점에 대해 그리 큰 희망과 기대를 거는 것 같지 않다. 진정으로 미국이 바라는 것은 북한이 핵을 외부 세계에 확산시키지 않는 정도로 미국의 기대치가 내려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핵실험을 한 이후 북한이 미국에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이미 다 써버린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시간은 북한 편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장기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중시도는 점차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또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도 하락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각국이 갖고 있는 자신들의 정치적 발전 수준, 힘의 대비 관계, 상호 관계 등이 동북아 지역의 안보 형세와 변화에 갈수록 더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은 최근 미국을 향해 거듭 강조해 말한다. 한국은 대미 관계를 계속 중시해야 하며, 한ㆍ미 동맹 또한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미국 전략가들의 마음은 한국을 떠나고 있다. 그들 마음의 ‘이한(離韓)’ 정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 또한 미국과의 관계가,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수준 때만큼 굳건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동북아 정세는 당분간은 미국의 그림자가 점차 엷어지는 가운데 북핵 문제는 질질 끌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과연 이 같은 상황에서 중ㆍ한ㆍ일 3개국이 어떻게 적극적인 태도로써 상호 관계를 처리하고, 협력을 강화하며, 또 분쟁을 해결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동북아시아의 안전과 평화를 구축하는 데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중ㆍ한ㆍ일 3개국은 각국 간의 전략적 상호 신뢰 문제를 깊이 있게, 또 여러 차원에 걸쳐 토의할 수 있는 ‘안보 대화’ 기제를 하루빨리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정리=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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