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안심시키기 급선무/김대중후보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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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급진·과격 이미지 씻어내야/지역당성격 탈피 “발등의 불”
김대중공동대표가 26일 예상대로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대권3수의 가도에선 김 후보는 『오늘같은 여건에서 못이기면 언제 이길 수 있느냐』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는 장식용 손수건을 양복윗주머니에 꽂고 빨간 넥타이를 맨채 수락연설을 했다. 말과 표정이 온통 활기로 가득찼다. 연설내용은 다분히 온건·보수적이었으며 연설할 때도 주먹을 불끈쥐거나 삿대질하는 모습은 극히 자제했다.
심지어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이 삐꾸러졌을 때 당대변인이 물실호기라는듯 냈던 민자당 비아냥성명을 김 후보는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취소케 하기도 했다.
2,3년전까지만 해도 상상이 어려웠던 그의 행태다. 놀라운 변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것도 자기생각과 습성을 더욱 굳힐 66세의 노년에 달구어내는 자기개혁의 몸부림이어서 다소 충격적이기조차 하다.
바로 이 점이 대권쟁취에 대한 그의 강렬한 집념의 표현이자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 준 것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절대적인 지지자들인 호남동향인사들 및 일부 진보적 인사들 외의 대다수 국민들에게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았다. 그 자신은 역대 독재정권이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자신을 음해한 결과라고 설명하지만 다수 국민들의 인식에서 쉽게 지워낼 수 없는 색깔이다.
그렇기에 김 후보는 스스로 자기를 새로 담아내는 모습을 보이고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그 스스로 진단하듯 집권의 절호의 기회를 맞고있는 내외환경에서 김 후보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판단하에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외형상 변모가 옳고 그름을 떠나 오랜 세월 상당수 국민들에게 응축되어 있는 반김대중정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게 일반적 평가다.
우선 3수길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장애는 숙명적인 경쟁자인 김영삼민자당 대통령후보다. 김영삼후보는 약점이기도 하고 강점도 되는 막강한 집권여당의 후보입장에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 87년 대선당시 같은 야권의 경쟁자였던 위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이다.
김대중후보는 최근 『나는 웬만해서는 자신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만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피력하곤 하지만 87년 대선때도 4자필승론의 자신감속에 김영삼씨와 결별하고 뛰쳐나가 3등밖에 하지 못했다.
물론 그 때보다는 훨씬 유리한 정치적 위치와 상황에 있다. 과격 이미지를 탈색하고 온건한 개혁주의자의 풍모도 심고 있다. 김영삼씨의 표를 갉아먹을 정주영국민당 대통령후보도 있다.
민주화 경력이나 「남다른 철학과 경륜,많은 경험과 국정관리능력이 있는 인물」(김 후보 정견발표)이긴 하지만 3자경합때 그는 민주화투쟁에서는 김영삼씨와,관리능력면에서는 정주영씨와 각각 비교우위를 논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그에 반해 특히 젊은 세대에 더 퍼진 두 김씨 식상론에서는 김영삼씨와 같거나 더 거센 부담감을 느껴야 하고 성향과 노선상에서는 정씨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씨보다도 훨씬 더 역풍을 안게돼 있다.
따라서 그를 거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다. 기득권을 움켜쥐려는 재계·군부·관계·중산층은 대체로 그의 반대편에 서있다. 김 후보는 이를 묽게하려고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 등 다수의 군출신인사를 영입했고 거국내각 구성,공무원 신분보장,경제정책의 일관성유지,중산층 육성 등을 기회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득권층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그가 남은 6개월여 이들을 어떻게 안심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최대현안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계가 여러문제에 억지부리며 달려들었지만 그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데서 드러난 사태의 기저에 깔린 민주당의 지역당적 성격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다시 말해 「김대중=민주당=호남당」이라는 국민들의 사시가 해소과제라고 할 수 있다.
당내 문제는 호남지구당위원장을 배수진으로 친 이기택공동대표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줌으로써 일단 발등의 불은 껐지만 영남쪽 위원장들이 대선에서 내일처럼 뛰어줄지는 알 수 없다.
그 보다는 영남인들을 포함한 반도동쪽 국민들의 정서는 여전히 민주당을 지역당적 성격으로 보고 있어 「산너머 산」의 현실이다.
그는 또 자신의 뛰어난 자질과 명석함,그리고 경륜때문에 주위에 유능한 참모를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경세가라면 주변에 심부름꾼만으로 채울게 아니라 훌륭한 조언과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인재들을 싸안는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데 김 후보는 그점이 미흡하다는 얘기도 있다.
김 후보가 경위와 실체야 어떻든간에 자신에게 쌓인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앞으로 남은 6개월이라는 단시일내에 어느 정도 씻어낼 수 있을지에 그의 집권비원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잘 웃지않던 김대중후보가 연신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바뀐 외형상의 변모가 국민들의 내면속으로 파고들게 할 수 있을지가 그의 최대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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