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6. 복싱 연습생 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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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필자가 장현골프연습장 앞에서 복싱 자세를 취했다.

요즘 한 대기업 회장이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에게 보복 폭행을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 시중의 화제다.

그 뉴스를 보면서 젊은 시절 내가 겪었던 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에 나는 권투를 배웠다. 성동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는데 '성체'는 약치이로 불리던 그곳은 당시 한국체육관과 쌍벽을 이루는 복싱도장이었다. 체육관에서 역기를 들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기분이 짜릿했다. 밴텀급이었던 나는 4라운드 스파링 파트너로 뛰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운동복이 든 가방을 메고 체육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시영버스 종점이 있는 서울 을지로6가의 국립의료원(메디컬센터) 앞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내 가방을 툭 쳤다. 동네 불량배였다. 반응이 없자 그는 또 한 번 내 가방을 툭 치면서 시비를 걸었다. 나는 또 다시 가방을 건드리려는 녀석에게 오른손 주먹을 한 방 날렸다. 상대는 쭉 뻗어버렸다.

"자식이, 어디서 까불고 있어"라고 꾸짖은 뒤 발길질까지 해주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는데 등 뒤에서 "잡아라"하는 소리가 났다. 몽둥이를 든 10여 명이 길 건너에서 달려왔다. 나는 곧 그들에게 붙잡혀 거의 죽도록 맞았다.

초주검돼 간신히 집으로 갔다.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엄청난 꾸중을 들으면서도 나는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밤잠을 설쳤다. 다음날 오후 겨우 일어나 체육관에 나갔다.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본 체육관 식구들이 웅성거렸다.

관장은 체육관 식구들을 소집했고, 보복작전이 시작됐다. 관장은 나를 폭행한 그들을 알고 있었다. 성동체육관은 당시 레슬링.유도. 역도 등 여러 종목의 운동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건장한 청년 40여 명이 을지로로 몰려나갔다.

"어떤 놈들이 우리 식구를 건드렸어?""무릎 꿇어, 감히 우리 '성체'를 건드려?"

불량배 두목은 고개를 숙인 채 싹싹 빌었다. 관장은 그를 몇 대 쥐어박고는 당장 주먹을 휘두른 다른 불량배들을 잡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그날 단단히 혼났다. 내가 맞은 것만큼 실컷 패주고 나서야 내 아픔이 사라졌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복싱을 배우긴 하는데 자칫하면 폭력을 휘두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사 중의 신사들이 하는 운동인 골프도 함께 배우고 있던 차라 영 마음이 편칠 않았다. 얼굴이 엉망이됐던 나는 한동안 골프장에도 나가지 못했다.

어쨌거나 나는 2년여 동안 복싱을 배우며 체력을 단련했다. 그때 익힌 웨이트트레이닝은 뒷날 내가 프로골퍼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골프는 마라톤보다 더 오랫동안 하는 운동이다. 체력이 필수다. 골프를 잘 치고 싶은 골퍼는 아마추어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해 볼 것을 권한다. 안니카 소렌스탐도 웨이트트레이닝 덕에 '골프여제'가 됐다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철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복싱, 아니 웨이트트레이닝 덕이었다. 나는 지금도 집 근처 헬스센터에서 역기를 든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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