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귀국(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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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간도』의 작가 안수길씨가 쓴 단편소설 가운데 『망명시인』이란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2차대전때 조국 에스토니아가 소연방에 강제합병되자 캐나다로 망명인 시인겸 소설가. 그 망명시인이 서울에 왔다가 한국의 문인들과 어울리게 되고,술자리에서 한 여인을 알게 된다.
10여년후 그 망명시인은 한국의 펜대회에 참가하게 되는데,옛날의 정인을 잊지 못해 낡은 사진 한장을 들고 한국의 친구들에게 그녀를 찾아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옛날에 들렀던 술집은 이미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엔 커다란 빌딩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그런 감상적인 로맨스에 있는게 아니다. 모국어를 잃은 한 망명작가의 정신적 방황에 있다. 그는 전에 서울에서 사귄 한 시인이 미국에 이민가 한줄의 시도 못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돌아오라고 하시오. 시를 버리지 않는다면…. 시는 제고장에서 제말로 써야돼요. 홈시크(향수)가 생기면 아무것도 안돼요.』 그 말은 바로 자신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불행하게도 그에겐 반겨 맞아줄 조국이 그때는 없었던 것이다.
엊그제 모스크바발 외신은 러시아의 망명작가 솔제니친의 부인 나탈리아여사가 망명 1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녀는 세 아들과 함께 모스크바 셰레메체보공항에 도착,『망명기간중 이 날만을 고대하며 살아왔다』고 감격해 하면서 남편도 곧 귀국할 것이라고 말했다.
솔제니친은 조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나라가 위대한 작가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정부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그러나 소련은 볼셰비키혁명후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는 그를 「반역죄」로 몰아 국외로 추방했다. 그리고 18년. 그는 망명지인 미국 버몬트주의 조그만 마을에서 모국어로 꾸준히 작품을 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못지않게 서구의 물질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러시아의 양심」이 드디어 모국어가 있는 조국으로 돌아간다. 그는 이제 「인류의 양심」이 되었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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