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결정 못살린 법원판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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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송당사자인 원고의 상속세법에 관한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제청했던 고등법원이 위헌결정을 받고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 법률적 논란이 일고 있다.
구체적인 사실을 따지기 이전에 이같은 고등법원의 판결은 일반 사회의 통념과 법감정에는 어긋난다. 사건관련 법조항이 위헌이라면 그에 근거한 행정처분 역시 원인무효라는 것이 일반 국민의 상식이자 법리상으로도 타당성이 주장될만한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건내용에 접근해 보면 판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건의 골자는 원고가 어머니로부터 9천5백만원 상당의 재산을 증여받았는데,이중에는 3천3백만원 상당의 부채가 포함돼 있어 그것을 제외한 6천2백만원에 대한 세금을 납부했으나 세무서측은 전체에 대한 세금을 부과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세무서측이 그런 행정처분의 근거로 삼은 상속세법 29조의 4 제2항이 「징수편의만을 생각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도외시한 것으로 헌법의 평등권,재산권 및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고등법원도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일단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제는 원고가 낸 소송이 행정처분취소소송이 아니라 무효소송이라는데 있다. 행정처분이 「취소」가 아닌 「무효」이기 위해서는 법률적으로 「중대하고도 객관적으로 명백한 하자」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재판부는 세무공무원이 과세처분을 할 당시에는 해당조항이 위헌임을 알 수 없었으므로 그 행정처분이 「중대하고도 객관적으로 명백한 하자」였다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무효일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원고로서는 이러한 판단에 이의를 제기해 대법원의 판단을 구해보든가 아니면 무효소송이 아닌 취소소송을 제기해보든가 하는 두가지 길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번 논란은 법률이 행정처분이 있은뒤에 위헌결정을 받았을때 그 행정처분을 무효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해석으로 귀착된다. 무효로 할 경우에는 행정과 법의 집행력과 안정성이 저해되며,무효로 하지 않을 경우에는 위헌으로 판정된 법이 현실적으로는 통용되는 모순에 빠진다.
아직 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바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사건을 대법원의 판례를 구해볼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르나 위헌결정을 받았으면서도 원고가 패소한데 대해서는 최종적인 법률적 판단이 있어야 행정도,일반국민도 혼란이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이 빚어진다는 것은 현행 법률 가운데 위헌적 법률이 허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그것을 점검해 손질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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