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재ㆍ보선이 보여준 ‘新지역주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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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27면

엊그제 치러진 4ㆍ25 재ㆍ보선 결과 읽기가 한창이다. 해석의 흐름은 크게 보아서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 노무현 대통령 침묵의 효과, 무소속의 약진 등으로 모아진다. 특히 별다른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 선거 정국의 골리앗 역할을 해온 한나라당에 대한 호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보수진영은 집안 단속의 차원에서, 진보진영은 추격의 고삐를 잡으려는 차원에서 골리앗 때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무사안일, 내부 경쟁의 과열에 초점을 맞추는 비판은 과연 시의적절한가? 혹은 제대로 조준된 것인가? 정치공급자(한나라당)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는 또한 국민적 취미로 자리 잡고 있는 바다. 하지만 이보다는 정작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수요자(유권자)의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진보의 구분을 떠나서 정치공급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수요자들의 의사표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대전의 유권자들은 다가오는 2007년 대선도 어김없이 지역 연합이 좌우할 것이라는 대선 게임의 법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지역 투표의 결속을 통해서, 충청지역의 유권자들은 청와대로 가는 길은 충청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아울러 대전 시민들은 지역연합이 선거 후반전에 가서야 구체화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만일 A와 B가 모두 C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C는 A와 B의 경쟁 속에서 마지막까지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얻는 길이 아닌가? 따라서 이명박ㆍ박근혜 후보가 이번 재ㆍ보선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더라도 대전에서 승리하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다. 마찬가지의 논리에 따라서, 충청 유권자들이 대선 직전에 한나라당을 선택할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결국 여야 후보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충청지역에 내놓을 ‘정책 보따리’의 성격이다. 한편으로 충청지역에 감동을 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수도권이나 그 밖의 지역에서 큰 역풍을 맞지 않을 정책을 찾아야 한다. 이 같은 양날의 칼을 찾지 못한다면, 과거의 수도 이전 논쟁과 같은 대혼란이 반복될 것이다.

둘째, 호남의 유권자들은 세습정치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DJ의 영향력을 지키고자 했다. 다시 말해, 유권자들은 지역의 결속을 통해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한번 더 일깨운 것이다. 無호남ㆍ無국가라기보다는 無DJㆍ無호남, 더 나아가 無햇볕ㆍ無정권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DJ식 햇볕정책에 대한 일정한 승인이 있어야 호남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이 길을 통해서만 청와대로 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막연한 립 서비스만으로 호남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안보와 정체성을 강조해 온 한나라당은 기존의 대북관이 김대중 햇볕정책과 갖는 최소한의 공통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앞으로 대선이 다가올수록 지역별 결속은 점차 강화될 것이다. 이러한 지역의 부활을 반드시 퇴행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2007년 지역주의는 3김 지역주의와는 다른 양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과거의 지역주의가 개인숭배에 가까운 집단의 정치였다면, 오늘날의 지역은 정책을 매개로 한 합리적 정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정치에서 지역이란 투명한 유리그릇과도 같아서 여기에 종교를 담을 수도, 정책대결을 담을 수도, 개인숭배를 담을 수도 있는 것이다.

4ㆍ25 재ㆍ보선은 정치의 수요자들이 지역주의를 여전히 한국 선거의 중추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정치공급자들의 차례다. 대선 후보들이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서 지역주의의 내용과 수준이 좌우될 것이다. 결국 재ㆍ보선의 민심을 제대로 읽는다면 한나라당과 진보진영은 이제라도 안과 밖에서 정책경쟁을 더욱 본격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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