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다간 서울 하늘도 갈색으로 변할 거예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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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05면

천찌췬(작은 사진 맨 왼쪽)이 1997년 아르시오뜨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 호수는 2003년 인근에 광산이 생기면서 2년 만에 말랐다. [천찌췬 제공 

네이멍구의 화가인 천찌췬(60·사진)은 중국 최대의 환경운동단체인 ‘쯔란즈유(自然之友)’ 회원으로 활동하며 만뚜 초원을 지키고 있다. 그는 전화와 e-메일을 통해 호수와 초원이 말라 황사가 생기는 과정을 전해왔다.

황사 발원지, 몽골ㆍ네이멍구 르포

저는 화가지만 붓을 놓은 지 오래됐어요. 사막으로 변해가는 네이멍구(內蒙古) 만뚜바오라거 초원을 지키느라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요. 재작년, 10년 가뭄에도 안 말랐던 커다란 아르시오뜨 호수가 말라버렸어요. 근처에 도로와 광산이 생긴 지 2년 만이었어요. 너무 깊어서 가장자리에서만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던 그 호수가 마르다니. 도로가 호수로 흘러들어오던 물길을 막고 광산이 물을 마구 가져다 썼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그곳에서 물놀이하던 사진을 들여다보면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마른 호수에선 바람이 휘몰아치고 1년 내내 먼지가 날아다녀요. 풀이 그 먼지에 덮여 말라죽으면 그곳이 또 모래땅으로 변하지요. 풀뿌리는 겨울에도 살아남아 흙을 단단히 잡아주는데 그게 없어지면 또 사방으로 먼지가 날리게 돼요. 그 먼지가 또 다른 풀을 죽이고… 그렇게 초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게 풀이 자랐어요.

황사가 오면 하늘이 온통 어두운 갈색으로 변해요. 차창에 모래바람이 부딪혀 쏴아쏴아 소리를 내면 정말 무서워요. 양을 치는 차오루빠투(40)는 지난해 봄 80마리를 잃었지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는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하긴 이번 모래바람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어린 양들이 모두 죽은 집도, 양이란 양은 다 죽은 집도 있어요. 말라버린 호수 근처에 사는 사슬렁(60)은 바람이 불 때마다 높아져가는 흙산을 두려워하죠. 몇m씩이나 쌓인 흙들이 수백m로 펼쳐져 있지요. 호수 근처의 목축민들은 다 사슬렁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할 거예요. 양들이 풀을 뜯어먹을 수 있는 땅 5000묘(약 100만 평)가 없어져서 걱정이 태산이래요.

만뚜 초원은 그래도 사정이 나아요. 일단 사막으로 변해버리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남아있는 초원을 어떻게든 지켜야지요. 목축민들은 초원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걸요.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어요. 비가 오면 풀이 돋고 그 풀을 양들이 다 뜯고 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죠. 그러면 또 어느 틈에 풀이 자라났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땅을 정해서 철조망을 치고, 좁은 땅에 난 풀들을 양들이 마구 뜯어먹게 만들었어요. 말을 키울 만큼 넓은 땅이 없어지자 다들 오토바이나 트럭을 몰고 다녔지요. 그래서 또 길을 만들고… 초원은 그렇게 없어져버린 거예요. 정부에서는 농사도 목축도 그만두라고 하지만 초원에는 양이 뜯어먹어야만 계속 자라나는 풀도 있는걸요. 이 초원은 유목민들과 함께 살아왔어요. 예전처럼 자연의 뜻에 맞춰 산다면 풀들은 시들지 않을 거예요.

천찌췬이 그린 초원 생태 살리기 홍보책자 

점점 땅이 말라가는 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지금의 사막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저는 믿어요. 초원이 모래땅으로 변하면 먼지가 사방에 흩날리고 황사는 점점 심해질 거예요. 한국까지 날아가지요. 지금 막지 않으면 아직은 푸른 만뚜의 초원들도 모두 황사의 발원지가 되고 서울 하늘도 이곳처럼 갈색으로 변할지 몰라요.정리=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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