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질게 삭아서 짠한 맛, 홍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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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27면

“저 좀 늦을 것 같은데, 약속한 중국집에 먼저 가 계시죠.” 예상보다 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전화를 드렸다.

김태경ㆍ정한진의 음식 수다

“오늘은 거기 말고 다른 데로 가자, 홍어 먹으러.”

약속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는 선배 때문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종묘 옆길에 있는 ‘순라길’(02-3672-5513)의 문을 열자 삭힌 홍어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 이 콤콤한 냄새.

홍어삼합 접시가 나오자마자 물었다. “삭힌 홍어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요?”

“글쎄다.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쓴 『자산어보』에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와 같이 먹는다’고 적혀 있으니 적어도 그 이전부터이겠지. 흑산도가 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니 변변한 냉장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잡은 생선을 뭍의 어시장에 가져오면 상하기 일쑤였는데, 오래 지난 홍어를 먹고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부터라는 이야기도 있지.”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고 삭는 생선은 홍어가 아마도 유일하지 않을까요.”

홍어는 깊은 바다 밑바닥에 살기 위해 독특한 생존비결을 가지고 있다. 수압이 높기 때문에 체내 삼투압을 외부의 압력보다 다소 높게 유지하기 위해 혈액 속에 다량의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홍어가 죽은 뒤 박테리아가 그 요소를 암모니아로 분해한다. 홍어의 독특한 냄새와 맛은 바로 이 암모니아 때문이다. 암모니아 성분은 또한 다른 미생물의 침입을 막아주어 식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

저녁을 늦게 시작한 탓에 시장기가 금방 홍어삼합 접시를 비워버렸다. “그러면 홍어찜을 먹어보자.”

“홍어찜을 처음 먹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해요. 입에 넣자마자 그 맛이 얼마나 강한지 눈물을 핑 돌게 하면서 숨 쉴 때마다 목구멍이 간질거리고, 그 특유한 맛이 콧바람에 배어나오는데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 같더라고요.”

“암모니아가 수분과 함께 입 안에 배어나오면서 입천장을 훌러덩 벗긴다고 하지 않아.” 홍어찜이야 말로 홍어요리의 으뜸이고 삭힌 맛을 극대화한 요리다.

“정말 신기한 것은 벗겨진 입천장이 그 다음 날이면 쉽게 아물어버린다고 해. 아는 사람은 입 안이 헐면 일부러 홍어찜을 먹고 완전히 벗어지게 한데.” 아마도 암모니아의 강한 살균력에 치유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강한 맛을 소화하기 어렵겠지. 홍어찜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면 미식가에 속한다고 하니.

“예전에 전라도에서는 장에서 산 홍어 한 마리를 줄에 꿰어 질질 끌면서 길바닥을 쓸고 가져와 두엄 속에 던져넣었다고 하잖아.” 장날 탁주 한 잔 걸치고 흥얼거리며 홍어를 끌고 오던 남도의 아버지들이 눈에 선하다. 두엄 속에서 모질게 삭아야 더 맛있는 것을. 목구멍, 콧구멍을 뻥 뚫어놓아 눈물이 찔끔 나야 으뜸인 것을. 그래야 고된 삶에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고, 탁배기 한 사발에 흥이 나지. 모질게 삭아서 눈물 찔끔 나게 해야 으뜸인 홍어의 맛, 그것이 바로 징하면서도 짠한 남도의 맛일 것이다.

“홍어내장과 보리순을 넣은 홍어애탕도 죽여주는데.” 이미 홍어와 막걸리로 꽉 차버린 식보는 우리의 소망을 더 이상 들어주지 않는다. 선배와 나는 지린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2차 자리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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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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