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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과 증오가 빚어낸 무차별 살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호 12면

16일 미국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를 전율케 했다. 33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한 이번 사건은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으로는 인명 피해가 가장 많다.

범죄심리학적으로 총기난사 사건을 분석해보자.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많은 살인사건은 두 가지로 나뉜다. 연쇄살인(serial murder)과 다중살인(mass murder)이다. 희생자가 많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다른 점도 있다.

우선 연쇄살인은 반(反)사회적 범죄자에 의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어 실행에 옮겨진다.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에 의해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연쇄살인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반면 다중살인은 적응상 심각한 문제를 지닌,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과적 문제를 안고 있는 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또 다른 특징은 연쇄살인이 살인사건의 중간 중간에 휴지기(休止期)를 갖는다는 것이다. 한 번의 살인을 끝내고 다음 살인에 착수하기까지 확실한 휴식기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다중살인은 휴지기 없이 한꺼번에 폭발한다.

연쇄살인범은 일반적으로 범행대상이 명확하다. 이들이 선호하는 피해자는 유기적인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다중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특별히 선호하는 피해자의 특징이 없다. 범행의 동기적 측면에서 보자면 연쇄살인의 경우 대부분 도착적(倒錯的) 동기를 지니는 반면, 다중살인은 피해의식과 분노가 그 원인이다.

이런 기준을 놓고 볼 때 미국에서 발생한 학교 총격사건들은 대부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외톨이에 의해 저질러진 다중살인이다.

국내에서도 총기를 이용한 다중살인이 발생한 적이 있다.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부대에서 ‘김동민 일병 총기난사 사건’으로 장병 8명이 숨졌고, 1982년 4월 경남 의령에서 발생한 ‘우범곤 순경 사건’은 주민 5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두 건 모두 군대나 직장에서 소외된 부적응자들이 오랫동안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끝에 평상시 불만이 있던 사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이번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미 이민자 중 모범시민이라고 여겨지던 한국인에 의한 사건이라는 것이 의아했던지 일부 매체는 조승희의 국적을 반복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은 가해자의 국적이나 인종이 아니다. 사회적 적응에 실패한 그가 겪은 장기간의 소외와 그로 인한 분노가 본질이다. 철저히 무시당해 왔다고 생각해온 그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총을 택했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건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전우를 향해 총격을 가한 김 일병이나 동료 경찰과 지역사회 주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우 순경처럼 피해망상과 분노가 뒤섞여 32명의 학생을 살해했다.

사회로부터 일탈된 구성원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방화다. 방화범은 멸시를 받아왔다는 피해의식에서 불을 지르는 경우가 많다.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의 범인도 오랫동안 쌓인 피해의식을, 지하철에 불을 지름으로써 폭발시켰다. 이 사건으로 무려 192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만일 한국이 미국에서처럼 총기소지가 자유롭다면 대구 지하철 참사는 총기난사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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