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학 맹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시대가 눈부시게 바뀌는데 따라 사회구조건방에 혁신적 발전·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태어난「최첨단」이란 용어가 요즈음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의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학설·기술들이 소개되고 있다. 거기에 발맞춰 물밀듯 최첨단 의료장비·약품들이 생산되고 있다. 그것들 중에는 의사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지만 지나친 상업성을 앞세운 허황한 상품들도 없지 않다.
의학 자체보다 의학산업이 한발 앞질러 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마치 의사는 도외시되고 최신기계·약품만 있으면 모든 질병이 치료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환자들이 홍보매체를 통해 이런 최첨단에 대한 정보를 먼저 알고 요구할 때 의사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든다.
최신형·최첨단이란 말은 한 시대를 거쳐가는 유행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가면 또다시 구형으로 전락,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범람이 정신문명을 위협하고 있는 현대 사회구조에서 우리들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지식뿐이다. 특히 최첨단에 대한 자체 개발능력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는 대부분정보를 외부로부터 공급받아야 하는 실정이고 보면 그 선택의 객관성을 찾는데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정신차리지 않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상업정보에 짓눌려 의학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 것이 반드시 좋다는 뜻이 아니고, 또 최첨단이라고 해서 반드시 위험스럽거나 조심스런 것으로 기피해서도 안될 것이다. 다만 최첨단의학을 다룰 수 있는 우리 나름대로의 바탕과 자질을 키우지 못하고 막연히 맹신하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진다면 최첨단은 오히려 우리에게 위험스런 장난감 같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첨단 의학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편 우리들의 가운 주머니 속에는 수십 년 전부터 사용해오는 구형청진기를 한시도 버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또한 상기할 필요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