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납북 일본인과 북핵은 별개의 문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종군위안부 문제는 얼버무리면서 납북(拉北) 일본인 문제에만 매달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보는 편협한 역사인식과 자기중심적 현실감각에 우리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그의 방미 기간 중 나온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 인정한 대로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의회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강제 동원을 인정하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다. 대신 '미안한 느낌(sense of apology)'이니 '연민의 정'같이 사전에도 없거나 당치도 않은 말로 손가락의 가시 같은 문제를 봉합하고 넘어갈 궁리만 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데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을 무마함으로써 하원에 제출돼 있는 위안부 결의안을 저지해 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반면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 말마따나 '강철 같은 의지'를 과시했다.

결국 그는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사과를 인정한다"는 말과 함께 "일본인 납치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말을 이끌어 냈다. 북한의 테러 지원국 명단 삭제와 납치 문제 해결을 연계하겠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당국자의 방침도 천명됐다. 이를 놓고 아베 총리는 방미 외교의 성과라고 만족스러워 할지 모르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短見)일 뿐이다.

일본 언론이 지적한 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의 대상은 피해 당사자들이지 미 대통령이 아니다. 또 북한의 테러 지원국 지정 해제는 2.13 합의 이행에 달린 것이지 일본인 납치와는 별개 문제다. 두 사안을 묶는 바람에 북핵 문제 해결에 새로운 장애를 조성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과거 자신이 저지른 더 큰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잘못만 물고 늘어지는, 균형 잃은 태도로는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북핵 문제의 해결도 어렵다는 점을 아베 총리는 직시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