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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에 판화 바람 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국내 화랑가에서 판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가나 그래픽스·갤러리SP·갤러리고도 등 판화전문화랑이 잇따라 문을 열고 전국적인 체인점까지 개설하고 나섰다. 또 불황을 겪고있는 기존의 화랑들도 판화를 새로운 타개책으로 주목하고 있다.
최근 서울인사동의 가나화랑 내에 문을 연 가나 그래픽스는 전국 대도시 10여 군데에 가맹 화랑을 모집, 한국화가 이응노·이종환, 서양화가 권옥연·오수환·오치균, 조각가 최종태씨 등의 작품으로 전국 순회전을 열고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밖에 밈모 팔라디노 등 외국의 유명작가를 초청해 직접 판화를 제작하고 보급할 예정이다.
지난해 연말 10만원대의『4인 작가 판화모음집』을 내 호평 받았던 서울판화공방은 자체판화화랑인 갤러리 SP를 마련하고 역시 전국 주요화랑 들과 보급망을 형성할 예정이다.
서울양재동에 새로 들어선 갤러리 고도도 전국 판매망을 모색하고 있으며 판화가 2-4절지 크기인 관례를 탈피해 전지나 1백호 크기의 대형판화를 개발, 제작할 계획이다.
이 화랑은 김근중·백순실·신장식·이열씨 등의 작품을 취급하고 있다.
이밖에 신설화랑인 갤러리포럼(왕6424)이 뒤비페·타피에스·아르망·브라이언 헌트등 구미의 유명화가 11명의 판화로「구미 현대판화 11인 전」(21∼31일)을 여는 등 각 화랑들이 활발치 판화전시회를 마련하고 있다.
화랑들이 이처럼 판화를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하고 나선 것은 기존의 회화와 조각이 값이 너무 비싸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뿐 아니라 아파트와 중산층의 증가로 판화에 대한 새로운 수요층이 크게 늘어났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요즘 아파트의 급증에 따라 벽면을 장식할 미술품으로 비교적 값싼 판화가 각광방기 시작 했고 일반인들이 생활형편이 나아짐에 따라 문화상품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다.
보통그림이나 조각이 한 점에 수백 만원 내지 수천만원씩 호가하는데 비해 판화는 30만∼40만원 정도면 수준 급의 작품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판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바뀌고 있는 것도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판화는 일반적으로 인쇄물과 같은「복제품」(Copy)으로 잘못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판화는 작가의 직접적인 손길과 서명이 스며들어 있는「복수미술」(Multiple)이다. 작가가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할 뿐 아니라 자신의「작품」임을 증명하는 서명을 넣는 것이다.
판화는 똑같은 작품이 여러 장 제작됨에 따라 회화에 비해 값이 많이 싸지만 회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갖고있는 미술품이다.
국내미술계는 지난58년 이항성·최영림·박수근등이「한국판화가협회」를 창립, 판화미술의 싹을 키웠으나 그 동안 회화의 들러리정도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나 90년 대들어 판화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면서 대학(홍익대·추계예술학교)에 판화 과가 신설되었으며 회화를 전공한 많은 젊은 화가들이 오히려 판화작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는 많은 화가들이 판화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나 대부분회화의 종속적 작업으로 벌이고 있으며 판화전문화가는 1백 여명밖에 되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판화가 회화 못지 않은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등 일찍이 판화의 중요성에 눈떠왔다. 지난89년 국제경매에서는 라우센버그의 판화『오이뷘드 팔스트롬 을 부르는 뉴욕버드』가 무려 90만 달러(약7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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