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우선 당내 수습·정돈부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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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 전당대회가 경선대회 아닌 사실상의 지명대회로 열려 김영삼대표를 대통령후보로 뽑았다. 모처럼의 경선시도가 상처투성이로 끝나버려 웬만하면 국민적 기대감도 모으고 당으로서는 축제 기분도 낼법한 전당대회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이런 파행적 후보선출은 선거전에도 영향을 미쳐 김 후보에겐 적잖은 부담이 될게 틀림없다.
그러나 민자당으로서는 상처를 받긴 했지만 중요한 정치일정을 끝낸만큼 이제부터의 행보가 극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우선 경선유산으로 빚어진 당의 지리멸렬상태를 하루빨리 수습해 국정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게해야 한다. 우리의 이런 충고는 지금의 민자당이 고와서가 아니라 그래도 국정을 맡은 집권당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현재 민자당은 당의 중심이 흔들리고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있는 인상이다. 내달이면 14대국회도 개원되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기 결정같은 중요한 국사가 코앞에 있다. 민자당으로서는 일부 세력의 이탈로 자칫 원내과반수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심각한 공무원사회의 눈치보기와 행정적 저하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판에 민자당이 경선후유증에 언제까지 매달려서는 안될 일이다. 정리할건 빨리 정리하고 발빠르게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그리고 이종찬씨측도 거취를 빨리 결정하는게 좋겠다. 그것이 공인의 도리다.
다음으로 민자당,특히 김 후보가 각별히 유념할 일은 선거정국의 조기과열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7개월이나 선거판이 계속된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민자당으로서는 선거운동에 눈을 팔기보다는 오히려 당의 중심을 잡고 국정수행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득표전략이 될 것이다.
곧 야당후보들도 모두 결정될터인데 각 정치세력과 정치인들의 생리를 익히 보아온 우리로서는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선거판을 벌이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집권당부터 자제의 모범을 보이길 거듭 촉구한다.
민자당이 이 시점에서 피할 수 없는 또 한가지 과제는 당체질의 개선이라고 본다. 민자당이 이번과 같은 최악의 난국에 빠진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정치로 할 일을 공작으로 하고,민주적으로 할 일을 밀실에서 하며,안과 밖이 서로 다른 이중성이 수시로 표출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민자당은 이번 파국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간부·소속의원·대의원·당원들을 바지저고리로 만들지말고 그들의 의견·지혜·주장이 당방침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한다. 줄서기니,「노심」이니 하는 말이 또 나와서야 되겠는가.
이번 기회에 당운영과 당의사 결정과정 등에 관한 진지한 검토가 있기를 바란다. 이런 당의 민주화·활성화가 있어야 목표하는 재집권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민자당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섰음을 거듭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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