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출신의 신예 지휘자 성시연(31ㆍ여)씨가 27일(현지시간) 독일 밤베르크에서 폐막한 제2회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했다.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최상위권에 입상한 것은 성씨가 처음이다.
왼쪽부터 4위 입상자 에바 스투르신스카(30. 폴란드), 2위 입상자 성시연(31. 한국), 3위 입상자 벤자민 슈와츠(27. 미국).
28일 수상자 콘서트를 겸한 시상식에서 성씨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손녀인 마리나 말러로부터 상금 1만 유로(약 1300만원)과 트로피를 받게 된다. 이날 연주회에서 성씨는 말러의 ‘이상한 뿔피리의 소년’ ‘교향곡 제1번’등을 지휘한다. 이 콩쿠르는 2004년 제1회 대회 때 우승을 차지한 베네수엘라 구스타보 두다멜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동시에 선임되면서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부산 태생으로 4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13세때 첫 독주회를 열었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다음 스위스 취리히 음악원을 거쳐 베를린 국립예술대에서 수학했다.
2002년 독일 베를린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로 데뷔한 성씨는 2004년 독일음악협회 지휘자 포럼 우수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잉그리드 졸름스 예술문화상을 받았다.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테 오퍼에서 열린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 최근엔 미국 동부의 명문 교향악단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음악감독 제임스 레바인)의 부지휘자로 선임됐다. 1885년 창단된 BSO에서 여성이 부지휘자로 선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콩쿠르 3위 입상자는 미국 커티스 음대 출신의 벤자민 슈와츠(27). 현재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있다. 4등은 폴란드 출신의 에바 스투르신스카(30ㆍ여)가 입상했다. 이스라엘 태생의 미국 지휘자 요엘 감조우(19)는 심사위원 특별 격려상을 받았다.
이번 콩쿠르에는 40개국 출신 223명의 응모자(여성은 33명) 가운데 14명이 본선에 올랐다. 본선 진출자 14명 가운데 3명이 여성이었고 그 가운데 성씨를 포함한 2명이, 6명이 겨루는 준결승에 올랐다. 결선에서도 각각 2위와 4위에 입상해 ‘우먼 파워’를 과시했다. 특히 본선 과제곡인 말러 교향곡은 방대한 악상 때문에 그동안 남성들만 제대로 지휘해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곡이어서 더욱 관심이 쏠렸다.
심사위원 10명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요나단 노트(밤베르크 심포니 수석 지휘자), 허버트 블롬슈테트(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밤베르크 심포니 계관지휘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계관지휘자, NHK 교향악단 계관지휘자), 한스 그라프(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 작고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 LA 필하모닉 행정감독을 지낸 어네스트 플레이셔만, 롤프 벡(밤베르크 심포니 합창단 음악감독), 세르주 도니(리옹 국립 오페라 예술감독), 페터 파스트라이히(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총감독, 오케스트라 경영 컨설턴트) 등 세계 저명 지휘자와 작곡가, 오케스트라 총감독 출신이 심사위원을 맡았다.
1위 없는 2위에 그쳐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정명훈의 뒤를 이어 세계 무대를 누비는 한국 지휘자가 나온다면 그 사람은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