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神이 못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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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무찌를 수 있는 한국의 절대 강자는 이순신 장군(1545~1598) 뿐이라는 믿음은 상식이다.
 
그런데 충무공은 성웅일지언정 신은 아니다. 신당에 이순신을 모신 무당이 거의 없다. 19세기의 반란수괴 혹은 실패한 민중혁명가 홍경래는 백마신장이 돼있다. 이성계, 박정희도 신이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외국인인 관우도 관성제군이라는 신으로 우리나라에 눌러 앉았다.

무당이 신으로 추앙하는 귀신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사람처럼 거짓말을 잘 한다. 무당에게 접근하면서 신분을 속인다.

최영 장군의 졸개였다고 정직하게 밝히면 무당이 우습게 본다. 그래서 최영 장군을 사칭한다. 무당치고 최영 신을 안 챙기는 이가 없다시피 한 이유다.

이순신은 비견할 영웅이 없는 톱스타다. 적당히 예쁘면 희롱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세가인에게는 범접 못하는 심리가 귀신과 무당에게 두루 적용된 경우가 바로 충무공이다.

게다가 이순신은 영생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오지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까지 전투복 차림으로 서 있다. 빛을 뿜는 백동 100원 주화의 모델도 충무공이다.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탤런트 김명민이 다가 아니다. 이전에도 영화배우 고 김진규가 ‘난중일기’와 ‘성웅 이순신’으로 국민을 대리만족시켰다. 아웃 오브 사이트라야 아웃 오브 마인드일 텐데, 눈만 들면 곳곳에 이순신이다.

탄신 462주년을 기리는 충무공 관련 이벤트 분위기가 절절하다. 역사 왜곡과 망언 전문집단인 일본의 도발이 끊이지 않는 탓이다.

이 땅과 바다를 외면한 채 하늘에서 신의 여유를 즐길 겨를이 이순신에게는 없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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