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회지도층의 병역비리 불치병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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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병역 비리가 또 터졌다. 이번엔 돈을 주고 병역특례 지정 업체에 들어간 것이다. 일부 특례자는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든 병역을 기피하려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주로 이공계 전공자를 대상으로, 산업체 근무를 통해 병역을 대체하는 이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면 장점이 있다. 대상자들은 공백 없이 일을 배울 수 있고, 업체는 저비용으로 고급인력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 따르면 이 제도는 심각하게 악용돼 왔다. 선발권을 업체 대표가 갖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이들 중 일부는 수천만원대의 검은돈을 받고 특례자를 뽑았다. 근무하지 않고도 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거나, 심지어 해외연수까지 허용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청탁자와 업체 대표 간의 관계가 대부분 친인척이나 친구여서 이런 교묘한 비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발생한 병역 비리의 뒤에는, 일부이지만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있었다. 이번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명색이 나라의 지도층이라면 여기에 따른 책임이 있는 법이다. 그중에서도 병역 이행은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다. 나라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도층은 겉으론 '병역의무 수행이 국민의 의무'이니 하면서 뒤에선 엉뚱한 짓을 해온 것이다. 정말 개탄스럽다.

이제 병역 비리는 우리 사회에서 불치의 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형태로 끊임없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병리현상이 계속 벌어진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검찰은 이번에 병역 비리를 뿌리 뽑는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