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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느낌!] 뻔하지 않은 … 맛깔난 불륜 복수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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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뻔한 불륜이라는 재료를 택했으면서도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는 그 조리법이 독특하다. 그 결과로 재료의 통념을 뛰어넘는 맛깔난 요리가 나온 격이다.

아내가 바람 피는 것을 눈치챈 남자 태한(박광정)은 그 상대인 택시기사 중식(정보석)을 찾아 서울에 온다. 손님인 척 택시에 올라타더니 강원도까지 장거리를 뛰자고 제안한다. 바로 중식의 애인이자 태한의 아내가 있는 곳이다.

두 남자의 성격은 퍽 대조적이다. 중식은 동네 아줌마든 다방 아가씨든 여자라면 고루 친절(!)한 호색한. 반면 한눈에도 소심남임을 알 수 있는 태한은 이런 중식에게 '수컷'으로서의 열등감을 느끼는 듯 하다. 도중에 택시가 고장나 반나절이면 될 길이 그만 1박2일로 늘어나는데, 태한이 전전긍긍하는 반면 중식은 매순간을 즐기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두 남자의 대조적인 성격이 길항작용을 하는 가운데 이 장거리 여정은 예상치 못한 소풍길처럼 돼버린다. 강원도에 도착하자 태한은 중식과 아내가 만나는 것을 확인하고, 모종의 복수극을 꿈꾸며 다시 서울로 간다. 태한이 중식의 아내(조은지)와 마주치면서 이야기는 더욱 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두 남자의 여정에는 기묘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산길에 수박이 한아름 굴러내려오지 않나, 기름을 넣으려 잠시 들른 주유소에 강도가 들지 않나. 그런데 이를 그려내는 영화의 시선은 큰일이 아니라 '그것도 일상'이라는 듯하다. 어쩌면 불륜을 소화하는 이 영화의 방식과 통하는 대목이다.

영화의 시각적 효과 역시 이런 주제와 조응한다. 곳곳에 U자형으로 굽은 길이 등장하는데, 영화에 그려지는 사람 사는 방식과 닮았다. 주인공들은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대신 이 굽이를 넘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길을 간다.

넓게 보아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와 닮았지만, 지식인의 위선에 대한 홍상수 특유의 냉소는 이 영화에 없다. 생생한 일상의 디테일을 강조하되, 그 주인공들은 그저 그런 보통사람들이다. 그 보통의 수컷들이 겪는 열패감, 여기서 회복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되는 경험이 경쾌하게 그려진다.

세 배우의 호연이 고루 돋보인다. 특히 박광정의 궁상스러운 소심남 연기는 일품이다. 번듯한 이미지의 정보석에게 호색한을 맡긴 캐스팅 역시 재미있다. 그 아내로 등장하는 조은지의 개성 넘치는 열연은 지난해 '달콤살벌한 연인'에서 보여준 것 이상이다.

48세 늦깎이 신인 김태식 감독은 최근 데뷔한 신인 감독 중에 단연 돋보이는 세공력을 발휘했다. 의도된 썰렁함을 감춰둔 이 영화의 유머감각에 모든 관객이 호응하지는 않겠지만,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특히 권하고 싶다. CGV 강변.상암.인천.서면, 미로스페이스, CQN명동, 프리머스 대전.전주 등 전국 8곳의 극장에서 개봉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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